스리랑카 '좌파 대통령' 탄생… IMF 추가 구제금융 늦춰지나

김희정 기자 2024. 9. 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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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가문' 출신 아닌 농가 출신 흙수저 디사나야케,
위크레메싱헤 치하 긴축 정책에 정권교체 요구 높아져…
IMF와 부채협상 재조정·긴축완화 공약 성사 여부 주목
22일(현지시간) 스리랑카 현지 신문의 1면을 차지한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당선자. /로이터=뉴스1

스리랑카의 '좌파' 정치인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라닐 위크레메싱헤 대통령의 긴축 정책에 대한 반발이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구제 금융이 절실한 스리랑카 경제를 디사나야케가 어떻게 이끌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22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디사나야케 후보는 스리랑카 대선 최초로 두 차례의 개표 끝에 574만표(42.31%)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디사나야케 당선자는 2위인 야당 지도자 사지트 프레마다사(453만표)보다 121만표를 더 얻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가 스리랑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선거였다고 밝혔다.

21일 선거에는 1700만명의 스리랑카 유권자 중 약 76%가 투표해 어느 때보다 정권 교체 의지가 강했다. 이번 선거는 스리랑카의 경제 위기 이후 2022년 민중 봉기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도피한 이래 첫 대통령 선거다. 위크레메싱헤 현 대통령은 시위 이후 의회가 임명한 대통령이다. 1982년 이후 총 8번의 대선에서 2차 개표를 실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스리랑카는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상위 2명 후보자만 두고서 투표자의 2, 3순위 선호 후보도 집계해 당선자를 가린다. 위크레메싱헤 대통령은 1차 개표에서 17%로 3위에 그쳤다.

22일(현지시간)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국민인민의힘(NPP) 대표가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대선 승리를 선언한 후 손짓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통신

55세의 디사나야케는 소셜미디어 X에 "이 승리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반부패와 빈곤 퇴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그는 경제 위기 이후 체계적 변화를 갈구한 스리랑카 유권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현재 스리랑카 국민 넷 중 한 명이 빈곤 상태에 있다. 디사나야케는 스리랑카를 경제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정을 이어가되, 긴축 조치를 완화하겠단 방침이다.

디사나야케 당선자가 속한 좌파 정당인 자나타 비묵티 페라무나(JVP)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두 차례의 무장 봉기를 일으킨 폭력적 과거가 있다. JVP와 연합한 국민인민당(NPP) 역시 2022년 시위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디사나야케는 당내 강경좌파 입장을 온건화하려고 노력해왔다. 현재 JVP는 의회에서 3석만 차지하고 있다. 디사나야케는 연합 정당인 NPP 대표로 대선에 출마했다.

다른 대선 후보들이 대부분 전임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가문의 일원인 반면 디사나야케는 남부 도시 탐부테가마의 작은 농가 출신이다. 정치적 기반이 가장 빈약한 대선 후보였다. 그는 집권 후 약 45일 이내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겠단 방침이다. 콜롬보 정책 대안 센터의 수석 연구원인 바바니 폰세카는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또 다른 선거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3일(현지시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시민들이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가 당선되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2022년 봉기 당시 스리랑카는 외환 부족으로 연료, 의약품, 조리용 가스 등 필수품 수입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이후 위크레메싱헤 대통령 치하에서 인플레이션은 거의 70%에서 한 자릿수로 둔화했고 차입 비용도 줄었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고 세금은 늘리는 사이 민심이 이탈했다. 나랏빚을 갚기 위한 긴축 정책은 저소득층의 생활고를 심화했다.

스리랑카의 총 대외부채는 약 380억달러. 디사나야케는 공약 대로 IMF와 구제금융 협상을 조정하면서도 세금을 줄이는 과제가 눈앞에 있다. 위크레메싱게 대통령은 지난해 3월 IMF 구제금융 지원을 조건으로 증세 등 긴축정책을 써왔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계속 받으려면 협상안대로 경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디사나야케는 기존 조건을 폐지하지 않고 '수정'하면서 IMF와 협의하겠단 방침이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부채 계획을 다시 검토하거나 IMF와 회담을 재개할 경우, 다음 구제금 3억5000만달러 지급 시기가 늦춰질 위험이 있다.

디사나야케는 당선 확정 이후 "위기에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려면 위임받은 정부가 필요하다. 이 나라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분열을 종식시켜 국가를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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