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2주년 기획]“대한민국, AI를 차세대 '수출 먹거리'로 키워야”
세계 경제는 늘 위기의 연속이다. 불확실성이 반복되고 혼란이 가중되면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문 앞에 서 있다. 이 문을 여는 열쇠는 '인공지능(AI)'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AI는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 먹거리다. 문을 활짝 열고 나가야 한다.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세계 각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AI 기술 우열이 경제, 사회, 안보 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AI 기술 격차가 곧 국가경쟁력 차이로 직결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산업인 반도체는 대만에 역전을 허용했다. 수출시장 점유율이 두 자리에서 한 자리로 내려갔다. 이차전지와 바이오, 로봇 등 6대 산업의 수출 경쟁력도 2018년 2위에서 최근 5위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한국보다 적게 하락했고, 대만, 인도 등이 상승했다.
특히 힌떼 반도체 기술을 독점하던 미국은 이제 보조금 지원이란 지렛대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기업을 빨아들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지도가 재편되는 소용돌이 속에 AI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은 AI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각축을 벌이고 있다. AI를 단순 기술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미래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로 집중하는 것이다.
◇'소버린AI' 수요 맞춰 수출 전략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AI 각축전에서 대한민국이 차세대 수출 상품으로 AI산업을 육성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과 대기업 투자로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AI도 중장기 산업 육성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원을 쏟고 있다. 이들 나라에 '실존적 위험'을 느낀 유럽도 최근 규제 완화를 통해 AI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뒤이어 우리나라와 일본, 캐나다 등 중위권 사이의 순위권 경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와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를 예의주시하는 국가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AI기술을 개발하면서 우리와 같은 기술 선도 국가와 협력하려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인 인공지능 역량을 구축하는 소버린 전략에 나선 곳이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동이나 아세안,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의 문화와 사회 가치관을 정확히 이해하는 '소버린AI'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매우 많다”며 “소버린AI는 AI모델뿐 아니라 AI데이터센터, 클라우드, AI 운영 경험, 산업확산 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전체의 구축이 중요한데, 우리나라가 AI개발기업부터 클라우드, AI 반도체, AI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까지 국가차원에서는 거의 모든 요소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에서 국내 기업이 각 국가의 소버린AI를 개발에 활용할 대규모 학습용 컴퓨팅 인프라와 각 국가 언어데이터 구축을 지원하고, 소버린 AI 수출 전략 수립과 실행을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분야 경쟁에서 앞서가는 나라들을 보면 최전방에는 기업을 내세운다.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과 정부이 '원팀'을 이뤄 국가의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허성욱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은 “미국과 중국에 종속되기 싫어하는 다양한 나라에서 우리나라와 AI 산업을 협력하고 싶어하는 수요가 분명히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토털 AI솔루션을 수출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R&D·인프라 투자 절실…규제 개선·기술 표준화도 필수
수출 전략 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및 AI 인프라 구축지원이 핵심으로 꼽힌다. 기술 발전에는 지속적인 R&D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최재봉 성균관대 교수는 “AI,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공장이 필요하다는 판단한 미국은 삼성전자에 9조원, SK하이닉스에 5조원 가량의 보조금을 지원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내년 AI 투자 예산이 고작 7000억원 수준이다. 수조원의 지원은 아니더라도 인프라만이라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표준화도 필수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AI 기술이 원활하게 적용되고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기술 표준을 선도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또 과도한 규제가 기술 개발을 저해하지 않도록 규제 완화 방안도 적극 마련해야 한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AI 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 확보가 주요 과제다.
무엇보다 AI 기술 발전의 근간은 인재다. 현재 국내에서는 AI 관련 학과가 점차 확대되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문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또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우리나라가 AI 인재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반도체 등의 제조 산업은 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AI는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스타트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이정동 서울대 응용공학과 교수는 “AI 시대를 맞아 다시 한번 국가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며 “다만 벌어지고 있는 차이를 추격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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