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쓰러진 여성…30분 안고 달린 ‘비번 경찰관’

안서연 2024. 9. 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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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한라산 정상에 오른 서귀포경찰서 대정파출소 마라치안센터 소속 김주업 경위.


쉬는 날 한라산 등반을 하러 간 경찰관이 정상 인근에 쓰러진 30대 여성을 구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이 경찰관은 여성을 살리기 위해 폭염 속에서 30분 간 여성을 안고 달렸는데, 무사히 119구조대에 인계한 뒤 다시 한라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경찰관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 "정말 천운이었다"…"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

지난 17일 제주경찰청 홈페이지에 30대 여성 이 모 씨가 올린 글.


지난 17일 제주경찰청 홈페이지에 '저를 살려주신 서귀포경찰서 김주업 경찰관님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게시글을 보면, 글쓴이 이 모 씨는 지난 13일 홀로 한라산 산행에 나섰다가 정상을 10분 남긴 지점에서 심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으로 쓰러졌습니다. 이날은 폭염특보가 발효된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남성이 119에 신고를 해줬으나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때마침 산행 중이던 김주업 경찰관이 이 씨를 발견해 곧바로 응급 처치에 나섰고, 입이 마를까 수건에 물을 적셔 올려주고, 30분 넘게 손발을 주물러줬습니다.

하지만 상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김 경찰관은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헬기 착륙장까지 이 씨를 안고 내려갔습니다.

구급대원들에게 인계될 무렵 의식을 차린 이 씨는 구급대원들로부터 "증상을 보고받았을 때 심정지 전 증상들이었다"며 "정말 천운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 경찰관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긴 이 씨는 "살면서 여러 우여곡절이 많아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가득했던 저에게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주셨다"며 "경찰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 "일말 주저 없이 도와…응급상황 대비 구급품 지참 칭찬"

지난 20일 제주경찰청 홈페이지에 50대 시민 신 모 씨가 올린 글.


칭찬 글을 올린 건 이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일에는 한라산에서 김 경찰관을 도와 119에 신고했던 시민 50대 신 모 씨도 제주경찰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

신 씨는 "(119에) 전화하고 있던 사이 등반객으로 한라산을 방문한 김주업 경위님이 상태가 안 좋은 등반객에게 주저 없이 응급 처치를 시행했다"며 "배낭에서 식염 포도당과 보온 은박지(은박담요)를 꺼내 등반객을 도와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신 씨는 이어 "김 경위님은 주저 없이 등반객을 안고 업고 헬리패드(헬기 착륙장)까지 이송해 주셨다"며 "산악 구조사에게 인계하고 자신의 길을 가던 김 경위님께 연락처를 물어 성함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신 씨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시민을 위해 일말의 주저 없이 도와주는 봉사 정신과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응급상황을 위해 필요한 구급품을 지참하신 준비 정신을 칭찬한다"고 말했습니다.

■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누구나 나처럼 했을 것"

서귀포경찰서 대정파출소 마라치안센터에 근무하는 45살 김주업 경위.


칭찬의 주인공은 서귀포경찰서 대정파출소 마라도치안센터에 근무하는 45살 김주업 경위입니다.

김 경위는 KBS와의 통화에서 "응급상황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한 것"이라며 "어느 경찰관이든 모두 나처럼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김 경위는 범인 검거 과정에서 다친 손목을 치료하기 위해 비번 날 마라도에서 본섬에 나왔다 복귀하기 전 홀로 한라산 등반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정상까지 10분 정도를 앞두고 계단에 쓰러져 있는 30대 여성을 발견했고, 온열질환을 의심해 배낭에 있던 식염 포도당을 꺼내 복용하게 했습니다.

김 경위는 마비 증세를 호소하는 여성의 손발을 주무르기에 앞서, 자신의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습니다. 상대방이 불쾌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김 경위는 추위에 떠는 여성에게 은박담요를 덮어줬고, 119구급대의 요청으로 삼각봉 대피소 인근 헬기 착륙장까지 여성을 안고 하산했습니다. 다행히 이 과정에서 여성이 안정을 찾으면서 한시름 놓은 김 경위는 다시 한라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김 경위는 "어떤 응급상황이 있을지 몰라 생활용품점에서 산 천 원짜리 은박담요와 식염포도당을 갖고 다닌다"며 "일반인들 입장에선 응급 처치가 힘들 수 있지만, 경찰이나 소방관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10년 전에도 택시 들어 시민 구조…"국민을 도울 수 있어 다행"

취재 결과 김 경위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김 경위는 지난 2014년 경기도 평택에서도 비번 날 동료와 함께 길을 가다, 택시 밑에 깔려 끌려가던 60대 남성을 구조했습니다.

당시 김 경위와 동료는 가까스로 택시를 멈춰 세웠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과 힘을 합쳐 택시를 들어 올려 60대 남성을 구한 뒤 구급차가 올 때까지 응급 처치를 했습니다.

지난해 2월 28일 서귀포시 토평동 도로에서 난폭 운전 차량이 도주하자 순찰차가 제지하고 있는 모습.


3년 전 가족들과 함께 제주로 이주해 경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 경위는 지난해 '자랑스러운 제주 경찰'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2월 서귀포시 토평동에서 향정신성약물을 복용한 후 난폭 운전을 한 20대 여성의 차량을 순찰차로 막아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공을 인정받은 겁니다.

김 경위는 "공적인 신분으로 국민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얼마 전 우리 딸이 '아빠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는데, 이런 뿌듯함을 느끼게 해줘서 경찰 조직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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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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