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죽이지않으면 죽어야했다" 8년 8개월 악몽같던 60년 전 그날 정글에서는...

이은지 2024. 9. 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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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09월 23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 이화종 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의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시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이웃나라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도 자유의 십자군으로 32만 5천여 전후들이 참전한 전쟁인데요.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의 십자군 32만 5천여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만큼은 잊혀지지 않고 있고요. 특히 생존해 있는 17만여 전우들의 전쟁의 상흔은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60년 동안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월남전에 참전한 자유의 십자군 용사를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 이화종 회장님 나오셨어요 회장님 어서 오세요.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 이화종 회장(이하 이화종):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귀빈: 네 회장님 저희가 대한민국 월남 참전자회라고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어떤 곳인지 그리고 회장님도 좀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이화종: 오늘 YTN라디오 방송국에서 60년 만에 우리 대한민국 월남 참전자회를 슬기로운 라디오에서 방영을 할 수 있게끔 국가보훈부와 YTN라디오에서 이렇게 신경 써주신 데 대해서 32만을 대표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박귀빈: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화종: 우리 단체는 월남전에 참전할 당시에는 32만 5천 명이 8년 8개월 동안 전투에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은 약 17만 명이 생존해 있고 14만 명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17만 월남 참전자회원 전우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돼서 반갑고요. 또한 14만 명의 유가족 여러분들한테 인사를 드리게 돼서 반갑습니다.

◆박귀빈: 이화종 회장님이신데요. 회장님 소개 잠깐 해 주세요.

◇이화종: 저는 월남전에 71년도 3월에 월남전에 참전을 하게 됐고, 72년도 2월 24일날 귀국을 했습니다. 약 1년 가까이 이제 전투에 참여를 하게 됐는데 그 당시에 이름도 모르고 월남전에서 참 두려움이 참 많았었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 당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명을 받고 참전했던 역전의 용사로서 지금 자긍심은 대단히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박귀빈: 그때 여러 부대에서 참전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전투부대로 참전을 하셨던 건가요?

◇이화종: 저는 청룡부대에 전투부대로 참여를 했고요. 그 당시에 전투부대는 맹호부대, 백마부대, 우리 청룡부대 이렇게 참여를 했고 그 외에 이제 부대는 십자성부대는 군수지원단, 비둘기 부대는 이제 공병단 그다음에 이제 이동외과병원 등등 해서 32만 5천 명이 참여하게 됐습니다.

◆박귀빈: 그러면 전투부대에서 이제 참전을 하신 건데 그 안에서도 보직 같은 것들이 있나요?

◇이화종: 저는 원래 이제 행정병이었었는데 해병대는 그런 거 없어요. 먼저 남진 선배님도 유명하신 분이었잖아요. 그분도

처음에는 전투에 참여를 했고 3개월 동안 전투에 저도 참여를 해서 많은 숱한 고비를 넘긴 적이 있습니다.

◆박귀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 이화종 회장님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는데 사실 60년 정도 됐기 때문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월남전 다 아시겠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아니면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 되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저희가 인터뷰 자세히 이어가기 전에 월남전 관련해서 OX 퀴즈를 준비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거 OX 먼저 짧게 딱 짚어보고 나서 인터뷰를 한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장님 준비되셨죠? 네 들어가겠습니다. 1번 60년 전 32만 파병 장병들이 베트남으로 떠난 곳은 인천 월미도다.

◇이화종: 아니다, 부산항 3번부두.

◆박귀빈: 2번 월남전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이다.

◇이화종: 맞습니다.

◆박귀빈: 3번 이거는 보기가 있습니다. 다음 중 월남전과 관련이 없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1번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2번 가수 남진 3번 영화 국제시장 4번 월남쌈

◇이화종: 4번이지요

◆박귀빈: 4번 1964년 9월 11일부터 73년 3월 23일까지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8년 8개월 백호, 청룡, 백마, 비둘기, 십자성 부대 등이 파병됐는데 이 중 태권도 교관단도 있었다?

◇이화종: 있었죠

◆박귀빈: 5번 월남전 참전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에서 1월 1일 생존 참전 유공자들에게 새롭게 지급한 영웅의 제복 우리 육군 군복색인 개구리 녹색이다

◇이화종: 아닙니다.

◆박귀빈: 월남전 참전 60주년 맞아서 우리 생존 유공자들에게 참전 유공자들에게 영웅의 제복이 지급이 됐는데 우리 회장님께서 입고 오신 그거군요. 너무 멋지십니다.

◇이화종: 진짜 이제 좀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60년 만에 그래도 지금 현 정부에서 우리 참전 용사들에 대한 예우를 이렇게 해 준 데 대해서 감사 말씀드립니다. 너무 행복하고 고맙습니다. 우리 생존해 있는 17만 전우들이 바랐던 바입니다.

◆박귀빈: 그러면 이 제복을 혹시 어떤 장소에 좀 입고 가시면 좀 사람들이 알아보시죠?

◇이화종: 작년에는 영웅 제복을 6.25 선배님들만 이렇게 제복을 흰색으로 하는데 우리가 이제 6월 6일날 윤석열 정부에서 그래도 우리 영웅들의 제복을 17만 명의 제복을 이렇게 해 주셨는데 6월 6일 현충일 날 우리 보훈 단체 4개 단체장들을 월남전에 참전했던 단체장님들을 모시고 이 제복을 이렇게 하사하셨습니다.

◆박귀빈: 아마 국민들이 이젠 많이 알아보실 거예요. 그래서 오셔서 인사도 하시고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이화종: 지금 국가보안부에서 6월 6일부터 올 12월 말까지 생일에 따라서 17만 명에게 이 제복을 지금 계속 전달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박귀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혹시 여러분 우리 참전 용사들 제복을 입으신 용사들을 뵈면 인사 한말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화종: 감사합니다.

◆박귀빈: 실제 국민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시는데 잘 모르셔서 그러신 분들이 계시대요. 그래서 제복 입으신 분들 보시면 와서 막 인사도 하고 그러신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월남전에 대한 짧은 상식 OX로 먼저 풀어봤는데 답에 대한 설명을 인터뷰 진행하면서 이어가겠습니다. 일단은 먼저 이거부터 짧게 한번 짚어볼까요? 언제 어떻게 벌어진 전쟁이고 그리고 앞서 참전 용사들 자유의 십자군이라고 소개를 하셨거든요. 그 의미도 짧게 짚어주시겠어요?

◇이화종: 우선 저희들이 53년도 6.25 전쟁이 끝나고 한 8년여 만에 이제 지금 베트남 동남아에서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을 해서 힘든 상황에 접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한국군의 주둔하고 있는 미8군을 빼가겠다고 그때 64년도에 그런게 있어서 우리 박정희 정부에서 그러면 또 제2의 6.25가 불안하니까 그때는 우리가 군사적으로 굉장히 열세에 있었고 또 무기도 현대화 안 돼 있었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의 십자군으로 참전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 대신 조건이 있다. 우리가 소총을 만들 수 있고 대포를 만들 수 있는 기술 제휴를 해주고 외화적으로도 많은 협조를 해줬으면 우리가 참전을 하겠다 하는 그런 계기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64년도에 이동외과 병원에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그다음에 이제 건설지원단 태권도 교관단 이런 분들이 먼저 가서 대민 지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제 65년도서부터 우리 전투 부대가 이제 참여를 하게 되는 동기가 됩니다. 그래서 8년 8개월 동안에 연인원 32만 5천 명이 참전을 하게 됐고 그다음에 지금 뭐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엊그저께 체코에 대통령님께서도 가셔서 원전 수주하는데 우리 무기 수출을 이제 지금 하지 않습니까? 그때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건데 지금은 이제 우리 자체적으로 자주 국방을 이뤄서 그런 경험담을 가지고 우리가 소총을 만들면서 자주포도 만들고, 탱크도 만들고, 미사일도 만들어서 지금 국군 현대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자긍심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박귀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제 강국 포함해서 지금 이제 무기도 최첨단 무기가 수출한 나라가 됐고 그러니까 이런 월남전 참전해 주신 참전 용사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네요. 회장님 월남전 참전하셨을 때 당시에 나이가 어떻게 되셨었어요?

◇이화종: 그때 20살이었습니다.

◆박귀빈: 어떤 기억 떠오르세요? 당시에

◇이화종: 국가의 명에 따라서 갔지만 전쟁이라는 게 죽이지 않으면 죽는 그런 악조건 아닙니까? 거기다가 월남 정글이나 이런 데서는 기후도 낯설고 모든 지형지물이 낯선데, 거기는 특히 베트콩이라는 군인들이 인민해방전선이라고 총을 들면 베트공이고, 삽을 들면 농민이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열악한 가운데서 우리가 전투를 하게 됐고 지금도 이제 그런 항간에 우리 보고 일부 단체에서는 우리 보고 학살자라고 그러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그런 비하가 있어서 좀 안타깝습니다.

◆박귀빈: 당시에 전우들과 함께 고생했던 것도 많이 떠오르시겠어요?

◇이화종: 제가 지금 다른 우리 전우들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그렇고 제가 제일 원하는 것은 전쟁 트라우마라는 게 있습니다. 심합니다. 저도 보기에는 이렇게 괜찮아 보여도 우선 제가 고엽제 부상은 그 당시에 안 당했지만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이 두 번이나 걸려서 12년 전에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와서 괜찮았는데 또 2년 전에 또 폐암으로 와가지고 지금 또 투병생활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문제는 우리 전우들이 피와 땀이 그 당시에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꼴찌로 못 사는 나라였어요. 148개국인가 그 당시에 지금은 더 많지만 거기서 최고 꼴찌의 나라였었어요. 6.25 전쟁을 겪으면서 근데 그 당시에 63년도라고 저는 기억을 합니다. 한일 협정을 할 때 외화 차관이 그때 이제 3억 달러는 우리가 한일 협정을 하면서 받은 걸로 알고 있고 5억 달러는 차관으로 받았어요. 일본한테 그래서 그거 계기가 돼가지고 처음에 우리나라 경제가 이제 시작이 되면서 그 당시에 외화라고는 그게 처음 도입이 된 거예요. 8억 달러 중에 근데 8년 8개월 동안 우리가 전투를 하고 우리 연인원 32만 5천 명이 참전을 하면서 약 80억 달러의 외화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쉽게 얘기해서 8억 달러에서 차관 물론 5억 달러는 갚았지만 80억 달러라는 돈은 우리가 그 당시에 반도체가 있습니까? 무슨 제조업을 했습니까? 지금처럼 그런 게 아니었고 순전히 우리 월남 참전자들의 피와 땀에 그 대가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렇게 이제 선진국에 들어섰고 경제 대국으로 온 원동력이 됐다고 저는 자부하고있습니다.

◆박귀빈: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 이화종 회장님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이 단체에서 참전 기록 보존 사업을 하고 계시군요. 월남전 참전자 아카이브 제작 구축하셨다고 했고 또 21년부터는 매년 100여 명씩 기록물 남기고 계신다고 간략하게 설명 좀 부탁드려요.

◇이화종: 제가 2020년도에 회장에 당선이 되면서 그동안 60여 년 동안 우리가 참 제가 안타까웠던 것은 왜 우리는 역사의 기록에서 자꾸 지워지는가 그게 안타까워서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정부에서 지원을 안 해줘서 순수하게 회원들이 단 돈 1만 원씩 걷어가지고 우리가 아카이브를 만들어서 역사의 한 장을 남기자 그래서 시작이 됐던 겁니다. 그래서 21년도 8월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다행히 이제 한 98명을 이렇게 하다 보니까 너무 참 애환이 많고 진작에 했어야지 그거 보고 안 우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행사할 때마다 국회의원분들도 와서 또 정부의 요직에 계신 분들도 와서 보고 이건 해야 되겠다 해서 그래도 올해서부터는 국가에서 우리 국가보훈부에서 이제 예산을 편성해가지고 지금 열심히 이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는데 보람 있고 이런 거는 꼭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겨야만 되겠다 합니다.

◆박귀빈: 맞습니다. 정말 모든 분들이 원하셨던 거를 사장님이 계실 때 하고 계시네요.그리고 2024년 9월 25일 얼마 안 남았습니다. 모레입니다. 월남전 참전 60주년 기념행사 대규모로 실시한다고 하는데 대규모 행사네요. 어떤 행사입니까?

◇이화종: 제가 원래 89년도에 따이한 클럽이라고 그때 불혹의 나이대인데 한 40대인데 그때도 월남 참전이 있기 전에는 따이한 클럽이라고 우리끼리 모여서 이렇게 이 조직을 처음에 결성하게 된 동기가 된 거예요. 그때 제가 조직국장을 하면서 그때 보라매 공원에서 89년도 4월 30일 날 10만 명이 모여서 전후 만남의 장을 해봤습니다. 제가 직접 당사자하고 그걸 기획을 하고 연출을 해서 제가 해봤었는데 이제 60년이 됐는데 우리 전우들이 계속 만나고 싶어 하는데 요새는 정보 공개가 하면 법에 걸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전우들이 안타까움이 너무 많아요. 죽기 전에 한 번 전우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만나보자 해서 그러면 기왕이면 60년 만에 우리 현충원에서 먼저 돌아가신 분들, 추후에 돌아가신 분들이 거기 다 계시니까 같이 우리 만남의 장을 한번 해보자 그렇군요. 그래서 9월 25일 날이 주월한국군 창선된 날이기 때문에 그걸 기대해서 우리 그럼 거기서 현충원에서 한번 모임을 가져보자 해서 내일 모레 25일 날 1만여 명이 모여서 유가족과 함께 이제 전후 만남회장을 하려고 지금 기획을 하고 우리 직원들이 고생을 하고 있어요.

◆박귀빈: 뜻깊은 행사를 앞두고 계십니다.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텐데 끝으로 이거 잠깐 여쭤볼게요. 만약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라가 또 어려워진다면 노병이 되셨는데 회장님에게도 만약에 헌신을 요구한다면 어쩌시겠어요?

◇이화종: 전 당연하죠. 저는 지금도 마음은 이팔청춘입니다. 그리고 전투 경력이 있고 나라가 원한다면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이 한 몸 바칠 수도 있고 우리 전우들 32만은 다 그런 생각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박귀빈: 지금 투병 중이시고 누구보다 몸을 아끼셔야하는데..

◇이화종: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그냥 우리나라가 잘 된다면 얼마든지 저는 기꺼이 불러만 주십시오.

◆박귀빈: 회장님 우리 국민에게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 짧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이화종: 대한민국이 이렇게 선진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은 우리 302만에 전우들의 피와 땀이 기초적인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것을 원하지도 않고 단지 국가의 영웅으로서 노병들을 좀 인정을 해주고 대우를 해주는 명예로움을 지켜주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박귀빈: 이 방송 들으신 모든 국민은 아마 다 마음으로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이제 끝 인사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외치겠습니다. 스틸러브

◇이화종: 대한민국

◆박귀빈: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제5화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자회와 함께 했습니다. 이화종 회장님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화종: 감사합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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