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120패, 20세기 이후 최악의 팀 화이트삭스··· ‘유머’가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기어이 시즌 120패를 기록했다. 1962년 뉴욕 메츠와 함께 1900년 이후 한 시즌 최다 패 타이 기록이다. 아직 6경기나 더 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새로운 최다 패 기록을 갈아치울 공산이 대단히 크다. 1962년 메츠가 창단 첫해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번 시즌 화이트삭스의 기록은 더 참혹하게 다가온다. 현대 야구 최악의 팀이라 불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화이트삭스는 23일 샌디에이고 원정경기에서 2-4로 역전패했다. 3회초 선제점을 올렸지만, 3회말 곧장 동점을 허용했다. 6회초 1점을 올리며 다시 앞서나갔지만,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8회말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에게 홈런을 맞는 등 3실점 했다.
전날까지 36승 119패를 기록 중이던 화이트삭스는 이날 패배로 120패를 채웠다. 2003년 디트로이트의 119패를 넘어섰다. 하마터면 125년 전인 1899년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의 134패(20승)를 넘어설 뻔했다. 앞서 샌디에이고 원정 2경기를 모두 패했던 화이트삭스는 이날 패배로 원정 20연패를 기록했고, 이번 시즌 24번째 시리즈 스윕을 당했다.
화이트삭스는 LA에인절스와 3경기, 디트로이트와 3경기가 남았다. 오는 25일 시카고 홈에서 열리는 에인절스 3연전 중 첫 경기에서 굴욕적인 시즌 121패가 나올지 모른다. 디어슬레틱은 “역사적 기록을 직접 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에라도 이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관중이 몰릴 것”이라고 적었다.
웃음거리로 전락한 화이트삭스를 이끄는 이는 그래디 사이즈모어 감독 대행이다. 화이트삭스는 21연패를 당하며 28승 89패를 기록 중이던 지난달 9일 페드로 그리폴 감독을 경질하고 사이즈모어를 감독 대행으로 앉혔다.
사이즈모어는 2000년대 중반 추신수와 함께 클리블랜드를 이끌며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인물이다. 2004년 21세 나이로 데뷔해 2008년까지 MLB 첫 5시즌 동안 3차례 올스타로 선정되며 미래의 슈퍼스타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6세 되던 2009시즌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급격하게 내리막을 탔고, 2015시즌 32세 젊은 나이로 은퇴를 해야 했다.
현역 시절 누구보다 부침이 컸기에, 사이즈모어는 자신이야말로 지금 화이트삭스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SPN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모든 걸 다 겪어봤다. 신인 시절부터 성공했고, 베테랑으로 리더 역할도 해봤다. 부상으로 많이 고생했고, 기량이 떨어지는 것도 느껴봤다. 선수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비를 다 겪어봤다”며 “그래서 지금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즈모어는 남은 시즌 선수들이 어떻게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길 바란다.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 전망 또한 어두울 수밖에 없다.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고개 숙인 선수들의 등을 두드리고, 패전 후에도 클럽하우스 음악을 더 크게 틀라고 주문한다. 120번째 패배 이후에도 그는 “오늘 경기는 잊고 홈으로 돌아가 다음 시리즈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 모두 지금 상황을 다 알고 있고, 25일 다시 경기에 나가 최선을 다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삭스 우완 투수 데이비스 마틴은 ESPN에 “(이럴 때일수록)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면서 “모두가 이성을 잃기 직전의 경계선,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기록적인 패배의 나날 속에 선수들이 서로 책임을 묻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정말 끝이라는 이야기다. ESPN은 “화이트삭스는 과거의 패배자들과 달리 합리적이고 건강하며 성숙한 방식으로 불행을 처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단 공식 SNS는 ‘유머’에 앞장서고 있다. ‘졌다’는 말 대신 ‘상대 팀이 우리보다 점수를 많이 냈다’ ‘우리는 상대보다 점수를 덜 모았다’라고 적더니 최근에는 ‘MLB 앱에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다음 시즌 화이트삭스가 그래도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이런 부분이다. 1962년 메츠는 시즌 120패를 기록했지만, 불과 7년 뒤인 1969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며 ‘어메이징 메츠’라는 칭호를 얻었다. 2024년의 화이트삭스가 기대하는 것도 그런 미래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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