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투쟁 이끈 학생 운동가, 스리랑카 새 대통령으로[피플in포커스]

정지윤 기자 2024. 9. 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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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 정책과 부패 퇴치 공약을 내세운 좌파 야당 연합 후보 아누라 디사나야케 인민해방전선(JVP) 총재(55)가 스리랑카 대통령에 당선됐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BBC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선거관리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대선 2차 개표에서 디사나야케 총재가 42.3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밝혔다.

정권에 반대하며 무장 투쟁을 이끌던 학생 디사나야케는 이제 한 국가의 원수로서 직접 국정 운영을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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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학생 운동가로 시작…2000년 의원 선출
스리랑카 최초 마르크스주의 대통령…경제 회복이 당면 과제
22일(현지시간)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스리랑카 대통령 당선인이 수도 콜롬보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이후 인사하고 있다. 2024.09.22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반빈곤 정책과 부패 퇴치 공약을 내세운 좌파 야당 연합 후보 아누라 디사나야케 인민해방전선(JVP) 총재(55)가 스리랑카 대통령에 당선됐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BBC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선거관리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대선 2차 개표에서 디사나야케 총재가 42.3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밝혔다.

디사나야케는 엑스를 통해 "이 성과는 한 개인의 업적이 아닌 수십만 명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며 "여러분의 헌신이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디사나야케는 1968년 스리랑카 중부 탐부테가마 지역의 중산층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일가친척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현재는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1971년과 1987년 극좌 JVP의 주도로 일어난 두 차례의 무장봉기 중 디사나야케는 두 번째 봉기에서 학생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7년 시작해 1989년까지 이어진 두 번째 봉기는 스리랑카 정부가 인도의 중재로 인도 출신 소수 민족인 타밀족에 정치권력을 이양하려 하자 JVP가 이에 반대하며 벌어졌다. 당시 이 투쟁으로 약 6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비공식 집계됐다.

디사나야케는 스리랑카의 명문 대학인 페라데니야대학에서 학업을 시작했지만 무장 투쟁에 참여한 이후 정치적 위협을 받아 그만두게 됐다. 이후 1995년 켈라니야대학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졸업했다.

졸업과 같은해 디사나야케는 사회주의학생협회의 전국조직자로 임명됐고, 1997년 JVP 중앙위원회에 합류해 정당 내 입지를 쌓기 시작했다.

21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좌파 야당 후보 디사나야케 인민해방전선(JVP) 총재가 투표를 마치고 잉크가 표시된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디사나야케 후보는 이날 득표율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다. 2024.09.21/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2000년 처음으로 의회에 선출된 그는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전 대통령 정권에서 농업 및 관개 장관직을 지냈다. 2008년에는 JVP의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주류 정치인 반열에 들어선 그는 과거 무장 투쟁에 참여했던 것을 언급하며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여전히 충격을 받고 있으며, 항상 그것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2019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에게 대패했다. 당시 디사나야케의 득표율은 3%에 머물렀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2022년 경제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축출됐다.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부패 등으로 곪아버린 정부에 지친 국민들은 새로운 종류의 리더십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디사나야케는 강력한 반부패 정책과 대규모 복지제도, 세금 인하 공약 등을 걸며 대세로 떠올랐다.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디사나야케는 이번 대선에서 전통적 보호주의와 국가 개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정책을 옹호했다.

정권에 반대하며 무장 투쟁을 이끌던 학생 디사나야케는 이제 한 국가의 원수로서 직접 국정 운영을 맡게 됐다. 그는 기울어진 스리랑카의 경제를 회복하는 과제를 최우선으로 떠안게 됐다.

stopy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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