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통에 함께 창업했는데, 75년만에 깨졌다…3대서 무너진 고려아연 공동경영 [기자24시]

조윤희 기자(choyh@mk.co.kr) 2024. 9. 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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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에게까지 지분이 잘게 쪼개지고 승계된 상태에서 공동 경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MBK파트너스와 공동 경영을 선언하면서 밝힌 장형진 영풍 고문의 입장문은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의 오랜 동거가 쉬운 길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순환출자 규제 강화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장씨 측이 '장형진→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춘 반면, 최씨는 서린상사를 통해 행사하던 영향력이 줄어든 데 따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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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에게까지 지분이 잘게 쪼개지고 승계된 상태에서 공동 경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MBK파트너스와 공동 경영을 선언하면서 밝힌 장형진 영풍 고문의 입장문은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의 오랜 동거가 쉬운 길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동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는 역설적으로 공생을 깨트리는 트리거가 됐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최윤범 회장 측의 약점인 낮은 지배력을 포착해 공개매수에 나섰고, 최 회장은 국내외를 돌며 우군 찾기에 한창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 장형진 영풍 고문(오른쪽). [사진=각사]
이들은 피란길에 올라 전쟁통 속에서도 함께 회사를 차렸던 각별한 사이다. 영풍그룹은 황해도 출신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했다. 사업 시작 반년 만에 6·25전쟁으로 사업을 접어야 했지만 피란지인 부산에서 회사를 다시 세웠다. 이후 영풍은 1970년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석포제련소를 건설했고 1974년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두 가문은 석포제련소는 장씨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최씨가 맡는 등 사업 영역을 구분했지만, 그룹 회장은 번갈아가면서 맡았다. 주요 계열사 지분도 대부분 공유했다.

독특한 지배구조는 버거운 유산이 됐다. 기업집단 영풍 산하 97개 계열사가 최씨 일가 혹은 장씨 일가 중 어디와 가까운지 살펴보려면 한참 걸린다. 고려아연은 최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지만, 최대주주는 영풍이다. 순환출자 규제 강화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장씨 측이 ‘장형진→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춘 반면, 최씨는 서린상사를 통해 행사하던 영향력이 줄어든 데 따른 결과다. 영풍정밀은 사명만 보면 영풍 측일 것 같지만, 최 회장의 작은아버지인 최창규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고, 최대주주는 최 회장의 모친인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다.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 선언 이후 갈등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이번 고려아연 공개매수는 또 다른 분쟁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지배구조가 보여주듯 두 가문은 공개매수 단판으로 끊어질 인연이 아니다.

[조윤희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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