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경제...스리랑카 국가부도 후 첫 대선 승리자는 ‘서민 출신’디사나야케

이종혜 기자 2024. 9. 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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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부도 2년 여 만에 처음 실시된 스리랑카 대선에서 좌파 성향의 야당 총재 아누라 디사나야케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대선 개표 결과 좌파정당 연합인 인민해방전선(JVP) 총재인 아누라 디사나야케 후보가 라닐 위크레메싱게 현 대통령과 사지트 프레마다사 제1야당 국민의힘연합(SJB) 총재를 제치고 대선 재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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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라 디사나야케 인민해방전선(JVP) 대표 EPA 연합뉴스

국가 부도 2년 여 만에 처음 실시된 스리랑카 대선에서 좌파 성향의 야당 총재 아누라 디사나야케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가 경제 위기와 높은 세금, 생계비에 허덕이는 국민은 극심한 빈곤 등 경제적 불안정을 유발했다고 평가받는 낡은 정치 세력에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대선 개표 결과 좌파정당 연합인 인민해방전선(JVP) 총재인 아누라 디사나야케 후보가 라닐 위크레메싱게 현 대통령과 사지트 프레마다사 제1야당 국민의힘연합(SJB) 총재를 제치고 대선 재수에 성공했다. 사나야케 당선인은 부패 척결과 빈곤층 친화 정책을 내걸며 스리랑카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성향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해 인기를 얻었다. 1차 개표에서 디사나야케 후보가 39.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획득에 실패하면서 2차 개표가 치러졌고 42.31%의 득표율로 당선을 확정지었다. 스리랑카 선거 역사상 과반 득표 후보가 없어 2차 개표가 진행된 것은 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리랑카 대선 제도에 따르면 유권자는 최대 3명까지 순위를 매겨 투표용지에 기표한다. 최종 개표 결과 50% 이상 득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선관위는 상위 1, 2위 후보를 남긴 채 나머지 후보들을 탈락시킨다. 2022년 국가부도(채무불이행) 이후 2년여 만에 치러진 이번 대선에는 38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디사나야케 당선인은 23일 오전 취임해 5년간 스리랑카를 이끈다. 디사나야케 신임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를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올리는 것이다. 2022년 4월 830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안고 국가부도 선언한 스리랑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에 따라 이행해야하는 조건 재협상을 통해 민생고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난 2022년 외환 부족으로 인해 연료, 의약품, 식용 가스 등 필수품 수입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시위대 수천명이 수도 콜롬보에서 행진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점거했고, 고타바야 라자팍사 당시 대통령은 도주했다가 나중에 사임하기도 했다.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위크레메싱게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9억달러(약 4조원)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지원을 확보하고 채무 재조정 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 IMF 요구로 증세와 에너지 보조금 폐지 등 긴축정책을 펼치면서 경기가 올해 처음으로 잠정적 회복세로 전환해 경제성장률은 3%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전 정부시절 이뤄진 부패의혹도 조사해야 하는데 그는 2022년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부패 척결 등을 공약해 국민 지지를 확보하기도 했다.

디사나야케 당선인은 23일 오전 취임해 향후 5년간 스리랑카를 이끈다. 디사나야케 총재는 육체노동자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민 출신이다. 그는 대학에 입학 후 1987년 JVP에 입당해 활동했는데 당시 1970년대와 1980년대는 JVP는 무장혁명을 주도했지만 실패해 8만여 명이 사망하며 무장노선을 포기했을 때다. 최근 총선에서 4% 미만을 득표하며 당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2000년에 국회에 입성한 뒤 지금까지 의원 자격을 유지했고 2004년부터 1년간 농업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이종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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