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차 베테랑 환경미화원이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9. 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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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들이 새벽에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형진 | 환경미화원

2014년, 경북 경주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꽤 규모가 큰 주유소라 거래처들이 많았고, 그중에 경주시 산하 용역업체인 쓰레기 수거 사업장도 있었다. 하루는 기름을 넣고 있는데, 기사 한 분이 내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옆에 타고만 있어도 200만원을 줄 테니 같이 일하자는 거다. 당시 최저시급은 5210원, 8시간 기준 일급은 4만1680원, 월급은 209시간 기준 108만8890원이었던 내게 2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일단 면접 날짜를 잡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이야기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몹시 부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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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그 일 사람이 할 일이 못 됩니다. 허리도 아프고 냄새도 심하게 나고 위험하고 더러우니 절대 그 일 하지 마세요.”

나보다 먼저 같은 제안을 받았고, 그 일을 하다가 단 며칠 만에 그만둔 친구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쓰레기 수거업체의 기사들은 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러 명에게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적극적으로 말리는 바람에 오히려 더 흥미가 생겨 면접을 봤다.

그렇게 쓰레기차 뒤에 매달리는 미화원 생활을 시작했다. 일하는 첫날, 2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이 담긴 쓰레기 봉지를 수거했다. 어두운 새벽이라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다. 쓰레기차의 회전판에 플라스틱 통이 걸려 터졌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유를 뒤집어썼다. 놀라고 화가 난 내게 함께 일하는 71살 기사 어르신이 수건을 건네주며 한 말씀 하셨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약자야. 이군 어쩔 수 없네! 앞으로 이런 일이 종종 있을 테지만, 경험이 쌓이면 그나마 나아질 걸세.” 수건으로 닦아도 상한 우유 비린내가 계속 올라와서 일하는 내내 힘든 하루였다.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화원 한 분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도중에 시민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술에 취한 시민이 “쓰레기 치우는 주제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무시당하거나 불쾌한 일을 겪을 때 상대에게 똑같이 욕을 해 주고 싶지만, 민원인과는 절대로 다툼이나 싸움의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회사의 지시 사항이 있어서 꾹 참는다. 기사 어르신의 말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약자이니 어쩔 수가 없다. 쓰레기 용역업체는 해당 구청이나 군청, 또는 시에서 용역을 받아서 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민원인과의 관계다. 민원 점수가 좋지 않으면 다음 입찰에서 떨어질 수가 있다.

코로나 당시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했던 나는 원치 않은 혜택(?)을 입었다. 영업시간 단축으로 음식물 쓰레기양이 평소 절반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친분 있는 식당 사장님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반면 배달업을 주로 하는 가게는 매출이 많이 올랐는데, 그 때문에 늘어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미화원들은 더 힘이 들었다.

2024년 현재, 난 아직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벌써 10년차 베테랑 미화원이 되었다. 이제는 식당에서 버린 쓰레기양과 상태만 보고도 그 지역 경기를 알 수 있다. 그동안 미화원의 3종 세트라는 종량제 쓰레기봉투 수거, 음식물 쓰레기 수거, 재활용품 수거를 두루두루 경험했다. 몇년 전 개인 사정으로 경주에서 울산으로 직장을 옮겼고, 월급도 올랐다. 요즘은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주 5일 40시간 일한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일터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끝도 없이 매일 나온다. 치우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버리는 날카로운 물건, 유리 조각, 분리배출이 엉망인 수많은 재활용품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수거한다.

우리 일은 여전히 위험하고 힘들다. 작업하던 미화원이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나온다. 얼마 전에도 결혼을 앞둔 30대 미화원이 작업 중 음주운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회사에서는 매달 안전교육을 하지만, 갑자기 달려오는 차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우리 회사 직원도 음주운전 차량이 뒤에서 달려와 부딪친 일이 있는데, 다행히 큰 사고는 피했다. 개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쓰레기 파편에 맞는 일이 거의 없다. 경주에서 함께 일했던 기사 어르신의 말처럼 일이 경험이 쌓이니 요령도 생기고 쓰레기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일 작업하기 전에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안전히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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