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부르는 ‘습섬 효과’…대도시엔 사람도, 눈물도 많은 탓인가요
전 세계 1056개 도시 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주변보다 강수량 많아
기후변화로 20년간 습섬효과 2배↑
인구가 밀집돼 있는 도시는 주변 농촌 지역보다 기온이 높다. 밀집된 인구와 건물, 붐비는 차량, 거리를 뒤덮고 있는 포장도로 등이 어우러져 기온을 높인다. 이를 ‘열섬’(heat islands) 효과라고 한다. 보통 100만명 이상 인구가 사는 도시는 기온이 주변보다 약 3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도시의 이런 특성은 기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습도, 즉 강수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습도가 높으면 땀이 증발하지 못해 실제 기온보다 체감온도가 더 높아진다.
미국 오스틴텍사스대 연구진이 전 세계 1056개 도시(반경 5km 이상)의 2001~2020년 위성 데이터를 토대로 강수량 실태를 분석한 결과, 해당 도시의 60% 이상이 주변 농촌 지역(도시 반경의 1∼3배)보다 연간 강수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도시의 이런 강수량 특성을 ‘습섬’(wet islands) 효과로 명명했다.
연구진은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습섬 효과는 지난 20년 동안 거의 2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도시의 강수량을 주변 지역과 비교해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층빌딩이 만드는 상승기류가 비 유발
연구진은 조사 결과 더 덥고 습한 지역일수록 건조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도시와 주변 지역의 강수량 차이가 더 컸다고 밝혔다. 예컨대 베트남의 호치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는 주변 농촌 지역보다 연간 강수량이 200mm 이상 많았다.
대륙별로는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도시에서 습섬 효과가 가장 컸다. 습섬 효과를 보이는 도시의 비율이 각각 85%, 71%였다. 습섬 효과가 가장 낮은 곳은 아시아로 59%였다.
연구진은 특히 습한 지역에서 도시와 주변 지역 간의 강수량 차이가 조사 기간 중 연평균 37mm에서 67mm로 거의 2배로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이는 기후변화에 기인한 지구온난화와 급속한 도시화가 어우러지면서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이 전체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조한 지역에선 강수량 차이에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은 도시에 비를 더 많이 내리게 하는 몇가지 이유 중 특히 도심 고층빌딩 숲의 역할을 지적했다. 고층빌딩 숲은 바람의 속도를 막거나 늦출 뿐 아니라 공기를 도심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논문 공동저자인 종리앙 양 교수는 “건물이 바람 속도를 늦춰 수렴 효과를 더욱 키우고, 이로 인해 공기의 상향 운동이 더 강하게 일어난다”며 “이런 상향 운동은 수증기의 응축과 구름 형성을 촉진해 비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여러 도시 환경 요인 중 강수량과 가장 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인구라고 강조했다. 인구가 많을수록 더 조밀하고 더 높은 도시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도 더 많아져 결국 기온을 더 높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습섬 효과는 도시가 클수록 더 큰 경향을 보였다. 습섬 효과를 보인 도시의 비율이 인구 상위 도시 절반에선 67%, 하위 도시 절반에선 58%였다.
저지대나 계곡 도시는 주변보다 강수량 더 적어
열섬 효과도 강수량에 영향을 미쳤다. 둘 사이의 관계가 유의미하게 관련된 인구 2만명 이상의 271개 도시의 경우, 도시 표면 열섬이 1도 증가할 때마다 도시의 연간 강수량이 주변 지역보다 24.7mm 더 많았다.
산악이나 해안 같은 자연 지형도 강수량에 영향을 끼쳤다. 연간 강수량이 주변 농촌보다 200mm 이상 더 많은 17개 도시 중 10개는 해안도시였다. 산악지대에선 도시와 주변 지역의 강수량 차이가 적었다.
계절별로는 여름과 겨울보다는 봄과 가을에 습섬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강수량 차이는 여름과 겨울이 더 컸다.
소수이긴 하지만 주변 농촌보다 강수량이 적은 도시도 있다. 주변 지역보다 지대가 낮은 곳이나 계곡에 위치한 도시에서 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연구진은 미국 시애틀, 일본 교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사례로 들었다.
연구진은 도시의 연간 강수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포장도로로 뒤덮인 땅에 비가 내리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해 갑작스런 홍수를 촉발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연구는 도시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강수량이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를 이끈 데브 니요기 교수는 “예컨대 홍수에 취약한 습한 도시는 홍수를 억제하기 위한 조처를 취할 수 있고, 건조한 도시는 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73/pnas.2311496121
Global scale assessment of urban precipitation anomalie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쏟아지는 ‘원전 르네상스론’…대박 시작인가, 환상인가
- 한동훈 독대 요청에 “상황 보자”…윤 대통령은 왜 ‘떨떠름’ 할까
- 해리스, 트럼프와 토론 이후 주요 여론조사서 4~5%P 앞서
- 박종철 고문·삼성 비자금 폭로…역사의 고비마다 사제들 있었다
- ‘최저 11도’ 맑고 선선한 출근길…전국 일교차 최대 15도
- [단독] ‘큐텐의 계열사 돈 임의사용’ 문건 확인…그룹 배임수사 번지나
- 한동훈 ‘만찬 전 독대’ 요청...대통령실 “상황 보자” 미적
- 독 집권 사민당, 극우 정당 겨우 제치고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 1위
- [단독] 일본산 방사능 검사 예산 51% 삭감…내년 9월 중단 위기
- 체코 언론, 김건희에 “사기꾼” 썼다 삭제…도이치·탈세 의혹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