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미완성일지라도… 끝까지 아름답게 그려나가야 해[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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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다녀온 친구가 시무룩하다.
다니던 학교가 없어졌단다.
교육의 3요소에 본래 학교는 들어있지 않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새롭고 중요한 걸 일깨워주면 거기가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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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다녀온 친구가 시무룩하다. 다니던 학교가 없어졌단다. 위안이 되진 않겠으나 교문 닫았다고 교육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교육의 3요소에 본래 학교는 들어있지 않다. 학생과 선생과 교재만 있으면 일단 교육의 틀은 갖춘 거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새롭고 중요한 걸 일깨워주면 거기가 학교다.
정년은 정학이 아니다. 퇴직은 퇴학이 아니다. 읽었던 시를 다시 읽고 좋았던 노래를 다시 부르고 뒤늦게 깨달은 걸 글로 쓰니 사방이 학교다. 길에는 종점이 있어도 글에는 정년이 없다. 오늘은 잠에서 깨자마자 이상화(1901∼1943)의 시 ‘나의 침실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시인은 제목 옆에 이런 말까지 써 놓았다.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
아름답고 오랜 것은 꿈에도 있고 노래에도 있다. 나는 오랜 시간 운동장보다 노래 교실에 머물렀다. 교생실습 때 학생들에게 피터 폴 앤드 메리의 ‘500마일’을 가르쳐준 덕분에 지금도 제자들과 만나면 그 노래를 합창한다. 심지어 훈련소에서 입대 동기들에게 자작곡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사람마다 장착된 전압은 달라도 잘 고른 음악은 110볼트와 220볼트를 연결해주는 이른바 돼지코(플러그 변환 어댑터) 역할을 한다.
딴 거 없다. 흥을 살리고 그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찾으면 하루가 금세 간다. 그날도 노래 교실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 사람, 40년 관록의 가수 이진관이다. 마주치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의 히트곡 ‘인생은 미완성’(1984)이 재생된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가수와 헤어지고 지하철에서 나의 인생을 노래에 대입시켜봤다. 방송사와 학교를 오가며 지나치게 숫자에 일희일비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의 시청률이 올라갔을 리 만무하다. 후배 교사에게 교실에서도 시청률에 신경 쓰라 권고했다가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시청률보다 완성도가 중요하지 않나요?”
내 친구 중 하나는 높은 건물을 완성하는 데 반평생을 바쳤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로 눈을 감았다. 재물의 완성이 인물의 완성보다 소중할까. 앞서 부른 이진관의 노래에 순박한 해답이 숨어있다. ‘쓰다가 마는 편지’ 다음엔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그리다 마는 그림’ 다음엔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새기다 마는 조각’ 다음엔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가 바싹 붙어있다.
올가을엔 시와 노래와 함께 섬 나들이를 떠나보자.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중략)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김승희 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시 안에, 아니 섬 안에 적나라하게 포진해 있다.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
인생의 완성이 죽음과 맞닿은 건 아이러니다. 그러니 인생이 일주일이라면 금요일부터는 시청률 높은 인생보다 완성도 높은 인생을 추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인기에 연연하며 하루하루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은 사라지고 손때 묻은 인형만 남는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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