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천안전 그 후, 김상준이 설명한 '수원의 달라진 팀 스피릿'
추석 연휴의 첫 날, 김상준과 수원 삼성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하루였다. 자신이 역전골을 넣으며 승리를 가져왔던 천안 시티 FC를 다시 만났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녹록치 않은 상대였다. 전반 초반부터 천안의 에이스인 모따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실점 과정에서 선발로 나온 이종성이 발목 부상을 입으면서 김상준은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그라운드로 나서야 했다.
그리고 맞이한 후반전, 파울리뇨가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동점포를 터뜨리며 승리에 대한 희망을 안고 있던 후반 44분 변수가 발생했다. 백동규가 모따를 밟아 레드 카드를 받은 것이었다. 이미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쓴 상황에서 나온 수비수의 퇴장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변성환 감독의 선택은 미드필더 김상준을 센터백으로 내리는 판단이었다. 멀티성이 있는 김상준을 신뢰했기에 택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센터백 자리를 채 잡기도 전이었던 후반 추가시간 툰가라의 크로스가 모따에게 연결되었고, 그의 총알같은 헤더가 김상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실점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갖다댔지만 공은 야속하게 그물을 출렁였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1대2 패배, 추가골이 들어간 순간 김상준은 머리를 감싸쥐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김상준은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크로스가 모따한테 넘어갔을 때 제가 좀 더 빠르게 반응해서 골대 안으로 조금 더 각도를 좁혀놨으면 충분히 걷어낼 수 있을 만한 공이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좀 안일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발을 안 갖다 댈 수도 없었어요. 만약 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이 할 것 같아요."
경기종료 휘슬이 끝난 직후 미르스타디움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다이렉트 승격 싸움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패배, 승격 플레이오프를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을 실감하는 순간, 김상준은 "꼭 경기를 이기자는 마음만 가지고 이야기를 했고 경기 전 선수단 미팅에도 나서서 이야기를 했지만, 내 마음대로 축구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라고 패배 직후 느꼈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전의 수원이었다면 동력을 잃고 무너질 수 있었다. 전반기 4월의 무패행진에서 연패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변성환 감독의 수원은 달라져 있었다. 김상준은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이 라커룸에서 주셨던 메시지도 있었고, 선수들끼리도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들이 서로 있었다. 나와 (강)현묵이, (홍)원진이가 선배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었고 우리가 피드백을 받은 부분들과 스스로 느꼈던 부분들을 더해서 동생 선수들을 모아서 또 한 번 다 같이 이야기를 했었다."라고 달라진 라커룸 분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성남, 5월의 악몽 첫 시작점이었던 탄천 종합운동장에서의 리턴매치, 김상준의 마음은 비장했다. 훈련부터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임했고, 벤치에서 몸을 풀며 변성환 감독의 출격 명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1대1로 팽팽하게 맞선 후반 34분 피터를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은 김상준은 미드필더에서 무게감 있는 플레이로 역전승을 만들어내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천안전에서 고개를 숙였던 김상준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포효하며 추석의 악몽을 날렸다.
김상준은 "성남전을 앞두고 좀 다르게 준비를 했지만, 선제 실점을 하면서 경기를 어렵게 가져갔다. 그래도 다같이 포기하지 않고 후반전에 뒤집을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게 다 같이 한 발짝씩 더 뛴 것이승리를 하는 데 있어서 좀 중요했던 것 같고 다음 경기도 꼭 뛰고 싶다."라고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소감을 밝혔다.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던 비결은 바로 소통의 힘이다. 변성환 감독은 선수단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하나의 팀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난 A매치 휴식기에서는 선수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식사 자리를 가지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 선수들과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만들었다. 김상준 역시 변 감독의 식사자리에 참석했다.
김상준은 변성환 감독에 대해 "소통을 많이 하시려 노력을 해 주시는 것 같다. 식사자리도 원하는 것이나 말하고 싶은 것들을 편안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실제로도 많은 소통이 오고 갔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작용을 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부임 이후 느껴지는 팀 변화에 대해 "정말 많이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강조한 김상준은 "일단 연령대가 굉장히 낮아졌다.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나이를 보면 내가 거의 두 번째로 많더라.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확실히 많이 들어왔다."라고 젊어진 팀 분위기에 대해 설명했다.
팀이 어려진 만큼 중진에 속한 선수들의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김상준이다. 그는 "고참 형들도 있지만, 어린 선수들을 위해서 우리가 좀 더 책임감을 가지자고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 책임감들이 그라운드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다."라고 미소지었다.
혹시 말을 듣지 않는 후배들도 있을까? 김상준은 "다 말을 잘 안 들어요."라고 크게 웃어보였다. 이어서 "말도 안 듣고 까불락거리는 친구들이 많지만, 밉지 않고 너무 착하고 순한 동생들이기 때문에 잘 어울릴 수 있어 좋은 것 같다."라고 애정어린 한마디를 전했다.
김상준은 변성환 감독의 축구에서 가장 핵심인 자원 중 한명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시작으로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심지어 부산 시절에는 센터백으로 팀의 핵심자원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김상준의 멀티성은 변성환 감독에 있어 가장 보석같은 존재다. 그에게 진짜 포지션은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감독님과 면담을 할 때도 이야기를 했었어요. 저의 본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변성환 감독님이 오신 후에 공격형 미드필더도 소화를 할 수 있게 포지셔닝을 잡아주셨고, 훈련을 할 때도 공격적인 부분들에 자신감을 보였었는데 감독님이 그 요소를 잘 봐주시고 적재적소에 활용을 해 주셔서 딱히 뭐 어려움은 없는 것 같아요."
전술적으로 김상준의 자리는 상당한 부담을 요하는 자리다. 김상준이 뚫리게 되면 결정적인 위기를 맞기 때문에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야 수원의 승리가 보인다. 이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김상준은 "부담감은 어쩔 수 없이 안고 해야 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내 자리에서는 한 번에 뚫리지 않고 포백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고, 그 다음은 상대를 지연시키고 다시 저희가 정비된 수비를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역할인 것 같다."라고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이어서 "나의 위치가 공수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미드필더를 보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경기장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이나 도와줘야 될 부분들을 같이 소통하면서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수원은 선두 안양과 10점 차이다. 승격 플레이오프를 현실적으로도 생각하는 시기에 김상준의 경험은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김상준은 2022년과 2023년 연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 바 있다. 2022년 수원은 안양을 누르며 잔류에 성공했지만, 2023년 부산은 수원FC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한 기억도 갖고 있다. 그 두 번의 플레이오프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고 만약 플레이오프에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김상준은 "그 경험이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중요한 경험을 했고, 팀도 플레이오프를 경험 했었다. 그리고 웬만한 K리그1 팬들보다도 많은 팬들을 또 가지고 있는 것이 엄청난 힘이 되고, K리그1에서도 많이 뛰어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붙게 된다면 우리의 플레이만 한다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플레이오프는 지금까지 했던 경기들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짜내고 훨씬 더 간절하고 처절하게 싸워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에는 남은 경기가 8경기, 7경기 있기 때문에 그 경기에서 최대한 더 순위를 끌어올리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보였다.
빅버드에서 수원 선수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한 소년은 어느 덧 수원의 중고참급이 되어 베테랑과 신인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맑은 눈을 가지며 바라봤던 수원팬들, 그리고 그의 고막을 울렸던 함성을 기억하며 김상준은 승격을 위해 뛸 것이다.
"오늘 (배)서준이랑도 버스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시작 2시간 전에 버스를 타고 경기장을 들어오면서 본 풍경이 전부 수원 옷을 입고 계신 팬분들이셨어요. 원정 경기에 이렇게 원정 팬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경우가 정말 드물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다시 한 번 팬들의 소중함을 느꼈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빅버드에서 볼보이를 하면서, 또 프로에 오면서 항상 팬들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함은 이제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언제 어디서든 저희를 믿고 지지해 주시기 때문에 저희가 해야 될 것은 그거에 보답하는 것밖에 없고, 그 보답은 승격이라는 길로 가야되기 때문에 팬들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같이 잘 이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몬스터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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