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미야케 쇼 "거장이라고?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손정빈 기자 2024. 9. 2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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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새벽의 모든'으로 다시 한국 찾아
월경전증후군·공황자애 겪는 두 남녀 얘기
"생각 바꾸고 도울 줄 아는 캐릭터 끌렸다"
세오 마이코 작가 동명 소설 원작 영화로
"좋은 세상은 노력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등과 日 새 세대로 불려
"신경 안 써…내 안의 세대만 의식할 뿐"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미야케 쇼 감독이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9.23.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미야케 쇼(三宅唱·40) 감독의 새 영화 '새벽의 모든'(9월18일 공개)을 보고 나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밤하늘에 시선이 갈 것이다. 인공 빛이 너무 많은 곳에선 별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최대한 어둑한 곳을 찾아헤맬지도 모른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에서 가만히 별을 보고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대사를 떠올릴 것만 같다. "멀리 떨어진 과거의 빛인데 올려다 보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아요. 밤하늘의 별은 좋은 녀석 같지 않나요."

이 영화는 월경 전 증후군이 있는 후지사와,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야마조에의 이야기다. 지병 탓에 원만한 사회 생활이 어려운 두 남녀는 사장 포함 전 직원이 10명이 채 안 되는 '쿠리타 과학'이라는 회사를 다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야마조에는 어린이 과학용품 따위를 만드는 이 회사가 맘에 들지 않고, 야마조에보다 먼저 이곳에 와 이미 적응을 마친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의 불성실한 태도가 불만이다. 어긋나게 시작했던 두 사람은 우연히 상대 고충과 아픔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사이가 돼 간다.

미야케 감독은 이들의 관계를 특유의 관조적 시각으로 포착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들을 드러내려 한다. 이때 미야케 감독이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 바로 밤과 별이다. 쿠리타 과학은 1년에 한 차례 사회 활동 일환으로 인근 초등학교에서 플라네타리움을 만들어 작은 공연을 하는데, 그 업무를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주도하게 된다. '새벽의 모든'은 두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과정과 밤과 별에 관해 얘기와 이들의 대화를 엮어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와 우리를 이어주고 있는 그 희미한 고리들의 존재에 감사 인사를 한다.

할리우드식(式) 영화와 비교하면 '새벽의 모든'은 분명 슴슴하지만, 워낙에 구조가 정교하고 한 장면 한 장면 밀도가 높아서 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이건 분명 흔치 않은 솜씨. 이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온 미야케 감독을 지난 20일 만났다. 그에게 밤과 별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낮보다 밤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별을 보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아폴로 13호'라는 영화를 보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한 적도 있죠. 하지만 중학생 때 수학에 좌절감을 느끼고 문과로 돌아섰습니다.(웃음) 그렇지만 그 후에도 우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나 별을 바라보는 것은 제 삶의 일부입니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미야케 쇼 감독이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9.23. jini@newsis.com


'새벽의 모든'은 세오 마이코 작가가 2020년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소설을 온전히 따라가고 있진 않다.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라는 캐릭터나 주제 의식 같은 건 공유하고 있지만, 주요 설정 등은 미야케 감독이 각색 작업 중에 다른 걸로 대체했다. 이들이 만나는 회사가 원작에선 금속 도매 업체이지만, 영화에선 초등학생용 과학 완구 회사인 쿠리타 과학으로 바뀌었고, 플라네타리움이라는 것 역시 미야케 감독이 직접 가지고 들어온 소재 중 하나다. 그는 "처음엔 제목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게 어려웠다"며 "제목에 관해 생각하다가 플라네타리움까지 가게 됐다"고 햇다. "초등학교 때 플라네타리움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보고 나서 바깥으로 나갈 때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게 이 작품과 매치가 잘 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작과 다른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미야케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건 결국 원작의 캐릭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주인공이 월경 전 증후군이나 공황장애를 갖고 있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게 아닙니다. 이들이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생각을 바꿔 나갈 줄 안다는 게 인상적이었죠.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지 않아요. 또 다른 매력은 상대를 생각할 줄 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혹은 저렇게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작이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들 사이를 연애 감정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남녀가 꼭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마도 '새벽의 모든'은 우리 삶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외로운 것이지만 너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무수한 고리들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미야케 감독은 관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관계의 진실성을 재확인하면서도 관계의 효력을 과장하지 않는다. 서로 끌어 안아야만 삶을 견뎌낼 수 있는 거라고 호소하는 게 아니라 희미할지라도 우리가 연결 돼 있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벽의 모든'은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있지만, 현실을 지나치게 따뜻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후지사와와 야마조에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이들의 고통을 보듬어주는 쪽이다.

"일본에선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쿠리타 과학 같은 회사가 어딨냐고요.(웃음) 저는 현실이 차갑다는 걸 인정하지만 동시에 쿠리타 과학 같은 회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장소, 좋은 분위기는 만들어가는 거라고 봐요. 저는 인간은 상당히 게으르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노력 안 하면 좋은 것도 쉽게 망치기 일쑤죠. 그러니까 모든 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미야케 쇼 감독이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9.23. jini@newsis.com


미야케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고지 감독 등과 함께 일본영화의 새로운 세대로 불린다. 세계 영화계는 이들이 하나 같이 빼어난 작품을 연달아 내놓는 걸 보고 거장이 될 재목이라거나 이미 젊은 거장이 됐다고 평하기도 한다. 다만 미야케 감독은 이런 수식어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신 "나이에 맞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함께 거론되는 분들과 친합니다만 저희가 '새로운 세대로서 잘해보자'라고 하진 않습니다.(웃음)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 만드는 방식 모두 너무 다르니까요. 거장이라는 말엔 솔직히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부담스럽지도 않아요. 전 이제 40대이니까 40대에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합니다. 제 안의 세대 의식을 스스로 의식한달까요."

미야케 감독은 나이에 맞는 영화에 관해 얘기하며 이런 예를 들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을 만들 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을 내세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얘기였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게이코, '새벽의 모든'의 후지사와나 야마조에 모두 자신과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등장 인물들이 저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성장을 한 것인지 나와 거리가 먼 존재에게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마 그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새벽의 모든'이라는 제목엔 말 그대로 모든 게 포함돼 있다고 했다. 희망을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새벽은 왔다 간다고도 했다. "모든은 모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도 이 영화로 포지티브한 마음이 들길 바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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