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숨은 명산 봉황산] 봉황 품에 깃든 부석사…의상의 눈썰미에 고개 숙이다

김재준 '한국유산기' 작가 2024. 9. 23.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석사 배롱나무꽃, 저 멀리 장대한 백두대간.

여름날 무성하게 우거진 풀, 가지와 줄기는 맹렬하게 하늘로 오르고 온갖 잎들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한데 엉겨 숲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나무와 숲보다 풍경을 느끼며 걷는 길, 여기서는 계절과 어우러져 누구나 자연이 될 수 있다. 초록빛이 익숙해지니 개개의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봉숭아·채송화·맨드라미·개구리풀·개비름·애기땅빈대가 반긴다.

무더운 오전 11시, 부석사 오르다 고개 들어 보니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둥둥 떠간다. 매표소를 지나 오래된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초록 그늘 걸으니 시원하다. 이곳은 사계절 어느 때든 좋다. 벚꽃 피는 봄과 녹음의 향연 여름, 은행나무 곱게 물든 가을이 지나면 눈 내린 겨울의 설경도 볼 만하다.

봉황산鳳凰山(822m)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에 걸쳐 있는 부석사의 진산鎭山이다. 산세가 봉황을 닮아 봉황산이다. 이 산의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봉황 때문에 세세연년歲歲年年 부석사가 흥할 것이라 한다. 왕산王山이라고도 불리는데 공민왕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한다. 부석사 주차장에서 정상에 오른 후 되돌아오는 데 4.7km 남짓, 3시간 정도 걸린다.

봉황산 소나무, 조릿대 길.

유장한 산자락과 봉황, 화엄불교의 근원지

도로 옆 가게에서 등산길을 물으니 없다고 하는데, 듣고 있던 이웃 상가 주인은 "부석사 후문에서 마을 느티나무 왼쪽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11시 25분 부석사 경내에 서서 백두대간을 바라보니 유장한 산자락은 국토의 대간임을 실감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1,400km에 이르는 산줄기다. 소백산, 도락산, 속리산, 황악산, 민주지산. 산 너머 산, 산 위에 산, 그 뒤에 또 산, 첩첩이 그림처럼 겹친 산의 능선들이 모두 이쪽으로 오는 듯하다. 샘물을 떠서 마시니 물맛이 차고 상쾌하다. 안양루, 무량수전, 부석, 삼층석탑, 응진전, 조사당까지 갔다가 정오 무렵 부도 근처에서 학승學僧인 듯한 이가 물탱크 뒤로 올라가라고 일러준다.

산 초입의 대숲은 봉황의 밥그릇

오른쪽으로 가는 산길은 미끄럽고 경사진 컴컴한 숲속, 눈가에 하루살이 웽웽거린다. 거미줄까지 걷으며 한 발 두 발 내딛는데 땀이 흘러 벌써 옷은 다 젖었다. 축축하고 곰팡이 냄새 나지만 잠시 앉아 숨을 돌린다. 이 산속은 유난히 모기가 많다. 12시 10분 하루살이, 모기떼의 습격을 피하려 금방 일어선다. 진달래·철쭉·신갈·소나무. 무인지경 급경사 산림지대를 땀 뻘뻘 흘리며 오른다. 20분가량 지나면서 평지 같은 말안장鞍部 지대에 닿는다.

봉황산 정상.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곳인지 그 흔한 등산 리본도 볼 수 없다. 5분쯤 걸어 다시 오르막길, 일행은 시커먼 숲이 무섭다고 하는데 이내 독사를 만났다. 멧돼지가 온 산을 다 파헤쳐 놨다. 당단풍·쪽동백·쇠물푸레. 가지가 부러진 것을 보니 산길은 맞는 듯하다. 이정표 없는 적막강산, 버섯을 따러 다니거나 짐승들이 출몰하는 곳이다. 이 산에서는 멧돼지 만날 각오를 해야 한다.

밀림을 헤치고 12시 45분 능선길 5분가량 지나서 정상인데 지나칠 뻔했다. 봉황산 해발 822m, 어떤 산악회에서 고맙게도 표지판을 나뭇가지에 달아 놨다. 사방이 나무에 막혀 산 아래를 둘러볼 수도 없는 봉황산 정상이다. 절집에서 바라보면 이 산꼭대기는 극락세계인 듯, 봉황을 찾으려니 고행의 길이다.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 했다. 불사조로 신령스러워 새 가운데 으뜸이다. 닭 머리, 뱀의 목, 거북 등, 물고기 꼬리에 육척으로 오색찬란 상서로운 빛에 다섯 가지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성인군자가 나면 나타나는데 용·거북·기린과 사령四靈이다. 벽오동과 대숲을 만들어 머물게 했고 오동에 깃들고 굶주려도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알려졌다. 초입의 죽림竹林은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멧돼지가 파헤쳐 어질러놓은 산길.

봉황산은 백두대간 선달산(1,236m), 늦은목이, 갈곶산(960m)에서 남서쪽 능선 끝에 솟은 산이다. 봉황산에서 갈곶산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갈곶산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가면 마구령에 닿는다. 이 고개로 자동차가 다니는데 넘어서면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동네. 단양군 영춘면, 영월군 하동면 경계다. 동쪽에 물야저수지, 서쪽 골짜기 따라 임곡천이 흐르고 봉황산 남쪽 자락에 부석사가 자리 잡고 있다. 무량수전, 조사당 등 많은 국보급 문화유산과 풍광이 뛰어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선국사 이후 산천비보山川裨補를 위해 사찰을 많이 지었지만 이 높은 산 중턱까지 절집을 지었을까?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당시 이곳은 변방 지역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소백산 너머 단양군 영춘면은 온달 장군의 고구려 성터가 있다. 특히 영주는 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로 한때 고구려 영토였으니 아마도 문무왕이 부석사 일대를 거점으로 통일 의지를 천명했을 것이다. 676년 의상으로 하여금 이곳에 화엄종찰華嚴宗刹을 비롯해 수많은 사찰을 짓게 했으니 이 일대는 호국불교인 화엄불교의 근원지였다.

누각 위로 보이는 봉황산 정상.

선묘낭자 화무십일홍, 원효와 의상

오후 1시, 그나마 등산 리본을 위안 삼아 다시 내려간다. 발아래 버섯, 곰팡이, 낙엽 썩는 냄새, 내리막길은 길이 선명하니 한결 걷기 쉽다. 군데군데 커다란 소나무는 비에 젖어선지 시커먼 수문장처럼 우뚝 섰다. 무인지경, 적막강산 지대를 지나 오후 1시 15분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의 구름이 보이고 먼 산이 흘러가듯 길다. 벌에 쏘인 것인지 무릎이 따끔 거리는데 어느덧 마을의 집과 논밭, 산 아래 과수원이 나무이파리에 흔들거린다.

오후 1시20분 응진전, 조사당, 안양루, 무량수전. 경내는 보랏빛 수국이 만발하고 멀리 산 아래는 아득한 세상, 장엄한 화엄 세계를 바라보는 것 같다. 안양루의 분홍빛 배롱나무꽃 화르르 떨어진다.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르는 100일 동안 피는 꽃을 두고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인다. 화무십일花無十日 녹수백일綠樹百日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더니 어느덧 계절은 절정이지만 지나면 가을이요 겨울이 되니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을 어이 탓하랴.

부석사 숲길,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당나라에 유학하던 의상을 흠모한 선묘善妙 낭자가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돼 의상을 따라온다. 의상은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짓고자 하니 선묘는 바위를 공중에 띄워 훼방꾼을 물리친다. 그래서 절 이름이 '뜬 바위'의 부석사浮石寺가 됐다. 한국의 산지승원山地僧院·僧園으로 2018년 통도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때 세워졌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 불교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우리나라 오랜 사찰 대부분이 원효와 의상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사의 반열에 들어 축지법을 쓴 것인지 무인지경 산중 멀리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영향력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불교의 전성기를 향해 함께 갔지만 경쟁 관계였다. 의상은 진골이며 김일지金日之, 원효보다 여덟 살 아래다. 원효는 육두품 출신으로 설서당薛誓幢. 그러나 두 사람의 성향은 달랐다. 원효는 직관, 의상은 통찰을 중시했다. 요석공주와 사랑을 비롯해 많은 스캔들을 만든 원효와 달리 의상은 점잖은 승려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열렬히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으니 선묘라는 이국의 처녀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절대적이다. 여자들이 없었다면 아마 두 사람은 도를 통해 신선神仙이 되었을 것이다.

고색창연한 부석사 경내.

오후 1시40분 박물관 뒤로 걸어서 마을로 내려간다. 호두나무 기세 좋은 햇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길. 길섶에 봉숭아·채송화·나팔꽃·개망초꽃. 오른쪽으로 부석사 일주문이 보이고 멀리 소백산자락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저곳은 아마도 연화蓮華 세상일 것이다. 오후 2시경 인공폭포의 물보라가 더운 여름날을 식혀 주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부석사 주차장(등산 기점) ~ 은행나무 가로수 길 ~ 부석사 ~ 박물관 뒷길 ~ 물탱크 뒤 ~ 능선길 ~ 봉황산 정상 ~ 능선길 ~ 조사당 뒷길 ~ 부석사 ~ 마을 길 ~ 부석사 주차장

※ 대략 4.7km, 3시간 정도 걸림(산길이 어설프고 멧돼지 출몰할 수 있으므로 조심)

▶ 백두대간 산행 연계 _ 물야저수지·생달 ~ 사기점 ~ 왕바우골 ~ 선달산 ~ 늦은목이 ~ 갈곶산 ~ 봉황산 ~ 부석사

교통

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풍기 IC, 영주 IC)

※ 내비게이션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로 31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288)

※ 입장료, 주차요금 안내 : 부석사 관광 안내소(054-638-5833)

숙식

영주시, 풍기 읍내 다양한 식당과 모텔, 여관 등이 많음, 순흥면 전통 묵집 유명.

주변 볼거리

소수서원, 선비촌, 무섬마을, 산림치유원, 희방사, 죽령, 영주 중앙시장 등.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