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쪽 문을 닫고 살 수 있나 [김연철 칼럼]

한겨레 2024. 9.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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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경제’와 ‘역개혁’으로 북한 경제를 살리기는 어렵다. 북한은 남방과의 협상 과정에서 잠시나마 꿈꾸었던 번영의 미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분간 어렵지만, 언젠가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선택할 수 있는 국제 환경의 때가 다시 온다. 정세가 달라져도 ‘관계의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접촉해야 변화하고, 문을 열어야 발전한다.
북한이 다음달 7일 남쪽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고 헌법 개정 등을 논의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 15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전원회의를 열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10월7일 평양에서 소집하는 결정을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북한은 남쪽 문을 닫고, 북방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북한은 10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수정을 예고했다. 통일을 부정하고, 두 국가를 법제화할 것이다. 두 국가론은 분단 이전에 강대국의 분할론이었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충돌하는 완충국가의 비극적 운명을 다시 겪어야 하는가? 그리고, 분단 이후에는 전쟁론이었다. 이제 끝을 알 수 없는 대결의 악순환이 기다리는가? 아직은 두 국가를 구조로 볼 수 없다. 그 이유 중의 하나를 북한 경제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생존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나 북한의 판단과는 다르게, 북방 삼각관계는 유동적이다.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러 관계가 달라졌다. 군사협력을 대가로 러시아의 에너지와 식량 지원이 이어지고, 북한 노동자의 파견도 늘었다. 그러나 북한이 누리는 전쟁특수가 장기화하기는 어렵다. 언젠가 전쟁은 끝난다. 남는 것은 북한과 러시아 극동의 제한적인 연계뿐이다. 두 나라의 국제 제재를 무시하는 연대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방식과 그 이후 러시아의 국제적 역할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북-러 관계가 북방 삼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북-중 관계다. 북·중과 북·러는 협력의 구조가 다르고, 지리적 특성으로 영향력이 다르다. 북-중 관계는 ‘전략적 이익’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 경쟁하기 위한 중요한 완충공간으로 보고, 북한은 중국을 남방의 문을 닫아도 생존을 도와줄 후원자로 본다.

그러나 북·중 양국의 전략 차이도 있다. 중국은 미국과 전략경쟁을 하지만 속도를 조절하려 하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도 달라지지 않았다. 북-미 협상에서 미국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지역의 불안정을 가져올 북한의 핵 확산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북·중 경제협력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도 분명하다. 제재라는 국제규범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봉쇄가 풀렸지만, 양국의 무역이 예상만큼 늘지 않는 핵심 이유다. 2024년 상반기 북-중 무역을 살펴보면, 북한의 대중 수입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가발과 속눈썹이 대중 수출에서 57.9%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재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원자재를 들여와 북한에서 가공해 다시 수출하는 역외 가공 중, 제재 대상이 아닌 품목이 별로 없다. 북-중 관계는 이익의 일치와 차이를 동시에 봐야 한다. 최근 ‘차이’를 ‘관계 이상’으로 쉽게 해석하지만, 그것은 전체가 아니다. 앞으로도 북-중 관계는 한반도 주변 정세의 영향을 받으며, 이익의 일치와 차이 사이를 오갈 것이다.

북한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무역이 줄었기 때문이다. 제재 때문에 수출이 어렵고, 외화를 벌지 못하니 수입도 줄고, 그래서 다시 생산이 감소하는 악순환이다. 북-러 관계가 실물경제를 돌릴 정도의 외화 수입을 제공하기 어렵다. 북한은 ‘부족의 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역개혁’을 선택했다. 시장을 억압하고, 분권화를 회수하고, 중앙의 통제를 강화했다. 북한이 지난 6월 말 당 8기 10차 전원회의에서 재정상을 경질한 이유는 급작스러운 환율 폭등 때문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무역을 재개할 시점에, 부족한 외화 사정에도 공식 부문의 과도한 외화 확보 경쟁이 환율 폭등으로 나타났다. 무역이 늘지 않으면 외화가 부족하고, 그러면 북한 원화의 가치는 불안정해지고 경제 관리가 어려워진다.

북한의 식량 생산은 어려운 시기와 비교해서 늘어났지만, 분배 과정에서 과도한 정부의 개입은 유통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처럼, 기근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왜곡 때문이다. 북한은 ‘부족의 경제’에 ‘관료적 조정’으로 대응하지만, 성공하기 어렵다. 제재가 강요한 ‘수입 대체 전략’도 지속하기 어렵다. 수입이 어려운 역청탄 대신 풍부한 무연탄으로 철을 만드는 ‘주체철’과 석유가 아니라 석탄에서 석유제품을 만드는 ‘탄소하나화학’ 역시 경제성이 없고 효율이 떨어진다.

‘북방경제’와 ‘역개혁’으로 북한 경제를 살리기는 어렵다. 북한은 남방과의 협상 과정에서 잠시나마 꿈꾸었던 번영의 미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분간 어렵지만, 언젠가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선택할 수 있는 국제 환경의 때가 다시 온다. 정세가 달라져도 ‘관계의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접촉해야 변화하고, 문을 열어야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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