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받고 싶었구나!’[법조프리즘]
[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 흔히들 생생한 삶의 현장을 느끼고 싶으면 새벽시장에 나가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더 적나라하고 치열한 우리네 삶의 민낯을 보고 싶다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소액재판을 방청해보길 권한다.
그런데 이 중에는 소송이 불가피한 사건도 있지만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나은 사건도 적잖아 변호사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사건의 당사자들이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다. 재빠르게 사과를 하거나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했으면 될 일인데 상대방의 뻔뻔한 태도에 괘씸해서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말로 천 냥 빚을 지는’ 사람도 있다. 매일 같이 타인과 갈등을 빚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는 변호사보다 더 합리적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의뢰인에게 한 수 배우기도 하고 근시안적 태도로 벌어진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사람들을 보며 반면교사 삼을 때도 있다. 제아무리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건 본능적으로 숨기게 마련이라지만 명명백백하게 과실이 드러났음에도 끝까지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짤막한 사과나 미안하다는 기색만 보여도 넘어갔을 일을 적반하장으로 날 선 말을 내뱉어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일말의 양보나 타협 없이 완강하게 자신의 요구만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러한 태도들이 상대의 감정을 자극해 고소와 고발 등 각종 소송으로 이어지고 상황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소송에서 이겼다 한들 승자 입장에서도 속이 후련할 리 없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변호사는 법리에 능하기만 해서는 의뢰인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사람의 감정을 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합의나 조정을 진행할 때 변호사에게 이러한 능력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일방적으로 의뢰인의 입장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해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때와 한 발짝 물러서야 할 때를 찾아야 한다. 상대방이 사과를 원한다면 그것을 빨리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또한 변호사의 역할이다.
“사과받고 싶었구나.” 지난 20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상간녀를 변호하던 주인공이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건 위자료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라는 점을 깨달으며 한 대사다. 결국 주인공 변호사는 사과하도록 자신의 의뢰인을 설득하는데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법정 드라마보다 현실감 있게 느껴진 장면이다.
변호사를 10년 넘게 하면서 느끼는 바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정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일이 벌어졌을 때 상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작은 표정, 태도 하나가 상황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타인과 아무런 갈등을 겪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갈등을 마주했을 때 현명하게 해결할 수는 있다. 진심 어린 공감과 사과, 그게 전부일 때도 있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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