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의 최종 목표 '베테랑=서도철' '서도철=황정민'[EN:터뷰]
※ 스포일러 주의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건 아니다. 돈도, 권력도 서도철 형사를 막을 수는 없다. 나쁜 놈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잡는다는 그의 정의는 '베테랑2'에서도 이어진다. 모두가 기다려 온 서도철은 여전했고, 황정민 역시 변함없는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섰다.
'베테랑' 이후 무려 9년 만에 속편 '베테랑2'의 서도철 형사로 돌아온 황정민의 감회는 남다르다. 자신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신세계'(2013)를 찍던 와중에 황정민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차에 류승완 감독은 좋아하는 일을 어렵게 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만난, 황정민의 탈출구가 바로 '베테랑'이었다.
황정민은 '베테랑'을 두고 "힐링 되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자신만의 힐링이 관객들까지 만족시키며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말 그대로 '복덩이'였다.
그렇기에 황정민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첫 '속편'이 될 영화로 '베테랑2'가 제작되길 누구보다도 바랐다. 그의 바람은 9년 만에야 이뤄졌다. 자신뿐 아니라 모두가 기다린 작품인 만큼, 그리고 모두가 서도철의 복귀를 기다렸던 만큼 황정민은 누구보다도 '서도철'로 관객 앞에 서고자 했다.
다시 서도철로
황정민이 아닌 서도철은 이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객에게 '서도철=황정민'이라는 등식은 불변의 법칙과도 같다. 그렇기에 황정민 역시 9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다시금 '서도철'로 다가가는 방법을 제일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황정민에게는 자신감이 더 컸다.
"서도철은 제가 가공해 만들어 놓은 인물이에요. 누가 할 수 없고 저만이 할 수 있는 인물이기에 제 마음속에 딱 들어있었거든요. 서랍에 있는 서도철을 언제 꺼내야 하나 생각했던 차였죠. 그래서 2편을 할 때는 오히려 편안하고 쉽게 작업했어요."
'베테랑'에서 입었던 옷도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 입었다. 황정민은 "관객분들이 '베테랑2'를 보셨을 때 1편을 본 게 얼마 안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도 내 몫이겠구나 싶어서 감독님에게 1편 때 의상을 입겠다고 했다"라며 "1편 의상을 입었더니 약간 신기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옷처럼) 나도 보관이 잘되어야 하는데 그건 힘들지 않을까?"라고 농담을 건네며 "황정민은 늙지만, 서도철은 늙지 않는다. 3편을 한다면 또 그 옷을 입고 싶다. '서도철'하면 그 의상인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황정민의 강력해진 액션 그리고 '럭키비키' 정해인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서도철의 액션 내공은 더욱더 깊어졌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 액션을 두고 '정형외과 액션'이라고 정의했다. '존 윅 4'에 버금가는 계단 액션, 빗속에서 펼쳐지는 옥상 액션 등 다양한 액션 시퀀스 속 몸을 내던진 배우들의 연기는 보는 사람까지 아프게 하며 감독의 말마따나 '정형외과'가 절로 떠오른다.
황정민은 "1편에서 내가 소방전에 가슴팍을 부딪칠 때, 관객들이 순간 소리를 지르는 그 재미를 감독님이 보신 것 같다"라며 "이번엔 그걸 좀 더 효과적으로 넣으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워낙 액션을 잘 찍는 분이다 보니 머리에 이미 어떤 식으로 찍겠다는 게 다 있었다"라며 "다만, 옥상 액션 신은 비 오는 날 찍다 보니 너무 추웠다. 춥지는 않았으면 쉽게 끝났을 텐데…"라며 웃었다.
정형외과 액션을 가능하게 했던 건 '충무로 액션 키드' 류승완 감독뿐 아니라 액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난 유상섭 무술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정민은 '곡성' '인질'에 이어 '베테랑2'로 다시 만난 유 무술감독을 떠올리며 "날아다녔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워낙에 무술 베테랑으로 날아다녔던 사람"이라며 "굉장히 열려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충분히 배우들이 다 할 수 있게끔 열려 있다. 그런데 다 해보고 나서 보면 결국엔 유 감독님이 하는 대로 다 돌아오게 되어 있다"라며 웃은 뒤 "워낙 믿음이 있으니까 촬영할 때는 걱정이 없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황정민은 '베테랑2'와 자신에게 있어 '럭키비키'한 존재를 정해인이라고 했다. 그는 "'베테랑2'에 서도철은 이미 있다. 그런데 빌런으로 들어오려 하는 배우가 없다. 하고 싶어 하지도 않을뿐더러, 뭔가 했을 때 잘못될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배우가 많다"라며 "쉽게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배우가 없다. 그렇기에 정해인이라는 배우의 합류는 내게 럭키비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인이가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을 하면서 그런 (부드러운) 이미지임에도 그런 (빌런에 액션) 연기까지 해주니,. 그게 럭키비키 아닌가"라며 미소 지었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른이란
'베테랑2'는 단순히 액션만 깊이를 더한 게 아니다. 이야기에 있어서도 '베테랑2'는 사회적인 문제를 영화 안으로 끌고 와 관객들에게 이 시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전편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며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또 다른 길을 만든 류 감독에게 황정민은 존경을 보냈다. 또 그는 여기에 더해 '좋은 어른'이라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베테랑2'에서 서도철이 아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는 어른이 많잖아요. 우리는 늘 성장하고 있음에도 어른이랍시고 형편없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사회나 모든 게 복잡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정도(正道)를 걸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인 서도철은 서도철답고, 매력 있는 인물인 거 같아요."
감독이 서도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영화의 엔딩에 숨겨져 있다. 황정민은 엔딩을 두고 "정확하게 심판을 내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정당하게 벌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 모든 게 기본이 있는 건데, 지금은 기본이 흐트러졌다고 해야 할까. 복잡해졌다"라며 "(엔딩은) 그런 부분에 대해 정확한 메시지가 있다. 감독님과 이야기했을 때도 그 부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라고 귀띔했다.
배우 황정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 이루고 싶은 바람
사과할 줄 아는 어른, 정도를 걷는 서도철을 두고 황정민은 서도철답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도철은 "내 주변에 있으면 근사할 것 같은 인물"이다. 영화계에서도 황정민은 그런 배우다.
황정민은 어떤 역할을 맡든 '이 역할은 황정민 말고 할 사람이 없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역할에는 다른 사람이 안 떠오르게 하고 싶다. 이왕 하려면 진짜로 미친 듯이 잘하든가 아니면 안 하든가. 둘 중 하나인 거 같다"라는 것이다.
그는 배우인 자신을 '광대'라고 표현했다. "광대로서 보여주기 위한 직업이니까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는 게 황정민이 배우로서 가진 철학이자 소신이다. 그는 "관객들과 작품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예술가의 삶"이라며 "부모님이 어떤 배우를 소개할 때 '나 젊었을 때 이 배우가 있었는데 정말 괜찮았어. 정말 연기 잘하고 좋았어'라고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소개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도 수식어지만, 황정민이 지금 이 순간 듣고 싶은 이야기는 서도철이 대한민국 영화 속 대표 형사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기억되는 것이다.
"영화 중에 형사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 떠오르는 형사가 누구냐고 했을 때 그게 서도철이라고 떠오르게끔 하고 싶은 게 저의 목표예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형사(박중훈),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마동석), '공공의 적'의 강철중 형사(설경구)가 딱딱 떠오르잖아요. '베테랑=서도철' 그런 식으로 떠오르면 좋겠어요."
9년 만에 돌아온 서도철을 이번만 보고 놓아주기에는 황정민이나 관객이나 모두 아쉽지 않을까. 그에게 과연 언제까지 액션 영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진지하면서도 어쩐지 개구쟁이 같은 황정민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액션 영화는 '베테랑'만 할 거예요. 그 말인즉슨, '베테랑' 다음 시즌은 못 할 수도 있다는 거죠. 농담이에요.(웃음) 빨리 3편을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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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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