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위반서 열반까지[유영만의 절반의 철학]
[유영만 지식생태학자·한양대 교수] 지금의 내 생각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으로 생긴 결론이다.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내 삶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본 삶의 정도나 수준만큼 내 생각의 차원도 다르게 잉태된다. 절반의 철학은 지금까지 내 삶의 버팀목이 돼준 기반도 위반하면서 아픔도 기쁨의 동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정상 등반 자체를 즐기며 깨달음의 즐거움을 나누는 열반이다.
절반의 철학은 기반(基盤)이다. 절반의 철학은 지금까지의 삶을 위반하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의 정초를 구축하려는 절박한 움직임이다. 마치 니체가 기존 철학적 전통과 지향점을 깨부수고 그 위에 새로운 철학적 전통을 건축하려는 전복의 철학을 시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반은 진통 속에서 전통으로 발전한다. 지금까지의 삶이 내 삶의 전반전을 차지했다면 이제 후반전의 삶은 이전과 다른 삶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새로운 배움의 여정을 떠나는 출발점을 마련해야 한다. 절반은 언제나 새로운 기초를 다지는 어제와 다른 몸부림이자 또 다른 출발이지만 언제나 가능성을 품은 미완성이다. 지금까지 내 삶을 지지해주고 지원해주었던 근본적인 토대 자체에도 물음표를 던져 새로운 지지기반을 마련하는 삶이 후반전의 삶이다. 기반을 뒤흔들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때 지금까지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다.
절반의 철학은 동반(同伴)이다. “피아노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40쪽). 신영복의 ‘처음처럼’에 나오는 말이다. 절반의 철학은 절반과 절반의 경계에서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하는 철학이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패배의 끝에서 승리를, 비탄의 끝에서 환희를 꿈꾸는 철학이 바로 절반의 철학이다. 이런 점에서 절반은 언제나 배우는 과정을 영원한 친구로 사귀는 도반(道伴)이기도 하다.
절반의 철학은 등반(登攀)이다. 등반에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있다. 남보다 빨리 오르는 데에만 전력투구하는 등정주의와 남다른 방법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다. 등정주의는 남들이 닦아놓은 익숙한 길, 보다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확실한 직선 루트를 따라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상 등정을 노린다. 이에 반해 등로주의는 빠른 길보다 분투와 노고 속에서 발견의 기쁨을 즐기고 모험과 도전 속에서 성취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길을 선택한다. 등정주의는 한 마디로 산을 정복대상으로 보는 등산전략이지만 등로주의는 산과 혼연일체가 되는 입산 전략이다. 절반의 철학은 시계보다 나침반을 들고 남은 인생을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면서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정상 도전을 즐기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절반의 철학은 열반(涅槃)이다. 열반은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불교 수행의 궁극적 경지를 지칭한다. 보통 사람이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삶과 다르게 고정관념이나 통념에서 벗어나 참 자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려 안간힘을 쓰고 애간장을 녹여보는 것이다.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경계는 아니다. 내가 경지에 이르는 동안 깨닫는 법열(法悅)과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서 느끼는 지적 단련 과정 자체가 기쁨의 원천이 된다. 이전과 다르게 살면서 낯선 미지의 세계나 사람과 우발적으로 만나서 생기는 마주침은 깨우침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우발적 마주침이 가져다준 깨우침은 후반전을 살아가는 든든한 밑받침이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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