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시 하는 마음

관리자 2024. 9.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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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강연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

시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말간 얼굴로 무자비한 질문을 하는 독자가 있다.

갈참나무 의자 허리에 누군가 "연선아 좋아해" 하고 새기는 일과 시인이 원고지에 시를 써내려가는 일의 본질이 같다는 것! 그러니까 마음 깊이 치밀어 올라 꺼내놓은 말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새겨두는 일이 '시 하는 일'의 시작인 게다.

시인은 "연선이"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시 하는 마음'을 새겨둔 의자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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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강연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 시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말간 얼굴로 무자비한 질문을 하는 독자가 있다. 꼭 있다. 뒷걸음질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호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듯 말을 찾았다. 변변찮은 대답을 동전 몇 푼처럼 꺼내놓은 순간을 지나고 생각하노니, 그때 이 시를 알았더라면! 나는 무구한 얼굴로 커다란 질문을 한 독자에게 답변 대신 이 시를 낭독해줬을 게다.

이 아름다운 시는 1연에서 이미 끝났다. 높고도 깊은 ‘참말’이 순하게 놓여 있다. 시의 시원이 궁금한 자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순간이다. 갈참나무 의자 허리에 누군가 “연선아 좋아해” 하고 새기는 일과 시인이 원고지에 시를 써내려가는 일의 본질이 같다는 것! 그러니까 마음 깊이 치밀어 올라 꺼내놓은 말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새겨두는 일이 ‘시 하는 일’의 시작인 게다.

시인은 “연선이”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시 하는 마음’을 새겨둔 의자에 앉아 있다. 모서리를 움켜쥐고 “그때 그 자리”로 간다. 기적이 일어나 의자가 된 나무가 나무가 된 의자가 되어, 새잎이 돋고 수맥이 흐르고 둥둥 떠올라 “기어이” 그곳에 도착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한자리에서 겪게 하는 일, 시의 일이다. 누군가에게 시는 ‘너’라는 장소, 한사코 도착하려는 궁극의 장소에 마음으로 도달하는 일이다. 그러니 연선이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의자에 연선이의 이름을 새기는 것도 시이고, 의자에 생명을 입혀 마음을 날아가게 하는 일도 시다. 정확히는 시 하는 마음들이다.

시인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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