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정원 제로베이스 검토 가능” vs “협박하면서 무슨 대화”

천선휴 기자 2024. 9.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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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협의체 참여 연일 촉구…2025년 정원 조정·사과는 거부
단체 한 곳이라도 나서면 출범한다지만…전공의 구속에 더 냉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추석연휴 기간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 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4.9.1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의료계가 참여를 거부하면서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는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더욱 꼬이는 모양새다.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안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데다 사직 전공의들의 잇단 소환 조사와 첫 구속 사례에 의료계가 정부에 더욱 날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21일) 출연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 "추석 이전에 출범을 목표로 했는데 잘 추진되지 않았다"며 "정부도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의료계에서 참여한다면 협의체 구성 형식에 상관없이 정부도 대화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추석 전 협의체 출범을 목표로 의료계와 비공개 회동을 이어가며 동분서주했지만 의료계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조정'과 '책임자들의 문책과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정부 역시도 2026학년도 정원은 원점에서 재검토 가능하지만 2025학년도 정원은 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장상윤 사회수석비서관은 지난 19일 오후 언론 브리핑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 정부의 태도 변화와 같은 전제조건을 달며 문제 해결을 미룰 것이 아니다"라며 "우선 대화의 장에 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조 장관도 21일 인터뷰에서 "2025년도 입학 정원 같은 경우는 이미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됐기 때문에 변경이 어렵다"면서 "2026년은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의료계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면 제로베이스에서 검토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는 의료계와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사과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국민 여러분께서 의료 공백으로 불편해하고 계시고 고통을 느끼시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과를 드리겠지만 야당이나 그 밖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유영 삼성서울병원 전공의 대표가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수사대는 지난달부터 전·현직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의 전공의 집단행동 교사 혐의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전공의 대표들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를 하고 있다.2024.9.11/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다만 정부는 의료계 전체가 뜻을 모아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고 단 한 곳의 단체라도 참여한다면 협의체를 가동하겠다는 뜻을 연이어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30병상 이상 3500여 개 병원급 의료기관의 원장들이 모여 그나마 정부에 호의적이었던 대한병원협회도 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한병원협회는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각종 명령을 내리며 의정 갈등이 극에 달하던 지난 4월 박민수 복지부 차관을 정기총회에 초대해 축사를 들어 의료계의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한 단체가 갑자기 '우린 참여하겠다'며 튀어나가 협의체가 출범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사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끄려면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와야 하는데 이렇게 탄생한 협의체에서 무슨 협의를 할 것이며 정책이 나온다고 한들 전공의, 의대생이 따를 리 만무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한 의대 교수는 "지금 사직 전공의 대표들도 줄줄이 소환 조사 받고 있는 마당에 어떤 단체가 협의체에 들어가겠나"라며 "핵심 키는 전공의가 쥐고 있고 핍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협의체 출범은 글렀다고 본다"고 혀를 찼다.

실제로 지난 20일 의료 현장에 남거나 복귀한 전공의·의대생을 조롱한 이른바 '감사한 의사' 명단을 만들어 수차례 게시한 사직 전공의 정 모 씨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의료계의 분위기는 더욱 냉담해졌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전공의 대표 줄소환에 구속 수사로 협박해대면서 조건 없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바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의과대학 교수는 "정부가 사태 초반부터 전공의들에게 각종 명령을 내리며 갖은 핍박을 해놓곤 사과도 없이 대화하자며 우롱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전공의도, 선배 의사들도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추석 연휴를 잘 넘겼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상황엔 웃을 수 없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의료 붕괴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의료대란 대책특위와 함께 전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협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을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해 제일 다급해야 할 곳은 정부고, 또 여당인데 지금은 가장 국민들이 다급해진 것 같다"며 "어쨌든 의협 쪽에서도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데 정부가 좀 개방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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