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 중국 강대국의 거래" 필리핀 해경선, 남중국해에서 철수
지난 9일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 새뮤얼 퍼파로 대장이 중국 남부 전구 사령원 우야숭 상장과 화상 통화를 했다. 미·중의 일선 사령관들의 통화는 2022년 8월 중국이 일방적으로 단절을 선언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 강행에 반발해 전구급 통화를 포함한 모든 군사 대화 채널을 끊었다. 이번 화상 통화는 중국과 경쟁은 하되 우발적 충돌을 피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화상 대화 다음 날 두 사령관의 통화 사실을 공개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화상 대화에서 퍼파로 사령관이 남중국해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음을 밝혔다. 중국군이 최근 미국의 동맹국과 여러 차례 안전하지 못한 상호작용을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9일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필리핀 선박이 충돌해 필리핀 해경선 카프 엥가뇨호에 지름 약 1m 크기 구멍이 뚫린 사실을 짚고 넘어간 것이다. 퍼파로 사령관은 또 중국군에 남중국해와 그 주변에서 위험하고 강압적이며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전술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비교해 중국 국방부의 발표는 매우 간단했다. 두 사령관이 공동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짤막하게 소개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통화가 있고 나서 4일 뒤 남중국해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필리핀의 해경 함정 테레사 마구바누아호(BRP 9701)가 지난 13일 남중국해의 분쟁 해역인 사비나 모래톱(Sabina Shoal)에서 떠난 것이다. 중국의 불법적인 무인 섬 매립을 감시한다는 목적으로 사비나 모래톱 부근에 파견된지 약 5개월 만의 귀환이다. 필리핀 해경도 마구바누아호가 지난 15일 자국 영토인 팔라완섬 서쪽 푸에르토 프린세사항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고 발표했다.
중국 해경은 필리핀 해경함이 떠나자마자 사비나 모래톱을 포함한 스프래틀리제도와 인접 해역에 대한 주권은 중국에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국 관할 수역에서 권리 보호와 법 집행 활동을 전개하고 영토 주권과 해양의 권리를 단호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해경 선박들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필리핀이 물러남으로써 일단락된 것이다.
미국은 며칠 전까지만해도 동맹국인 필리핀에 대한 안보 공약이 확고하다고 약속했다. 퍼파로 사령관은 지난 달 미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보급선을 직접 호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개입 의지까지 피력했다. 앞서 7월에는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필리핀 해경 함정이 공격 받을 경우 상호 방위 조약을 발동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런 엄포는 말뿐이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필리핀 함정의 철수에 사전 합의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9일 미국 인태사령관과 중국 남부전구 사령원 간의 화상 통화에서 최종 결정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미국의 입장과도 맞아떨어진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대선이 임박한 가운데 중국과의 군사적 위기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러-우 전쟁과 중동 사태를 거론하면서 곧 3차 대전이 일어날 것처럼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를 몰아부치고 있다. 민주당 정부의 외교 실패 때문에 전세계가 불안하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다. 이런 판국에서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중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일단 잠재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을 했을 법하다.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는 필리핀 경비 함정이 철수함으로써 남중국해 분쟁 해역에 대한 영유권 장악 의지를 국내외에 과시하게 됐다. 미국의 대선 기간을 틈타 군사적 충돌 위기를 고조시킨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시 주석 또한 미 해군 함정과 직접 맞닥뜨리는 일촉즉발의 사태까지 가는 것은 피하려 했을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무력 대결을 벌이려면 시 주석의 자신의 운명을 걸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중국은 지금 국내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보면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했다고 볼수 있다. 필리핀 해경선의 철수로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적절한 타협책이다. 필리핀의 영토 주권은 나중 문제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풀면서 중국과의 군사적 대화 채널을 대부분 복원하는 실리도 챙겼다.
이번 전구 사령관간 화상 통화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이후 재개된 일련의 군사 대화 채널 복원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졌다. 맨 먼저 지난 1월 워싱턴에서 열린 국방부 부차관보급 실무회담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어 지난 5월에는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둥쥔 국방부장이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했다.
이어 지난달 말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2인자인 장여우샤 중앙군사위 부주석 그리고 시진핑 국가 주석과 잇따라 만났다. 최근에는 지난 14일~15일 이틀 동안 미국 국방부의 마이클 체이스 중국·타이완 담당 부차관보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군 당국과 지난 1월 이후 8개월 만에 2차 실무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남중국해 위기, 북한의 도발, 중동 사태 등 전세계의 군사적 현안이 논의됐다. 지난 해 11월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이제 양국의 군사 대화 채널은 대부분 복원됐다. 중국 입장에서는 명실상부 G2로서 초강대국 미국과 한 자리에 앉아 세계 안보와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지위를 굳히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중국은 군사력을 계속 증강해 남중국해를 실질적인 자국의 영해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중해보다 큰 남중국해가 중국의 영해가 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의 핵심 무역로이자 풍부한 지하자원 매장지인 남중국해가 중국 해군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11척의 항공모함으로 상징되는 막강한 해군으로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남중국해를 잃으면 필리핀은 물론 아세안 10개국과 타이완에 대한 영향력은 급전직하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미국의 세계 전략은 공허한 소리가 될 것이다. 아시아가 중국 천하가 될 경우 미국의 세계 패권은 반토막이 날 수도 있다.
이런 악몽이 현실로 되는 것을 막기하기 위해 미국은 인도 태평양지역에서 동맹국과의 실전을 가정한 군사훈련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한국,호주 뿐 아니라 NATO의 해군까지 동원하고 있다.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은 물론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항공모함까지 남중국해에 와서 미해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앞으로 중국이 상대해야 할 국가가 필리핀만은 아니다. 남중국해는 신흥 강국 중국이 패권 국가인 미국에 거칠게 도전하면서 점점 뜨거운 바다가 되고 있다.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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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웅 국제정치칼럼니스트 nocutnew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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