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나이키, ‘엘리트’ 내쫓고 ‘스포츠맨’ 앉혔다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지난 19일(현지 시각)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 등은 “나이키가 갑작스러운(abruptly) 발표를 했다”고 보도했다. 1971년 시작된 나이키 역사에서 CEO는 4명뿐이었는데, 2020년 부임한 존 도나호가 불과 4년여 만인 다음 달 13일 물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도나호 CEO는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경제학과를 나와 스탠퍼드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 이커머스 업체 이베이에서 CEO를 거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후임자인 힐은 인턴직을 거쳐 32년 동안 나이키에서만 근무했다. 글로벌 기업 여러 곳을 경영한 엘리트 대신 나이키에서 한 우물만 팠던 힐을 새 CEO로 선택한 것이다. CEO 교체 발표 직후 나이키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10% 가까이 상승했다. 나이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사라진 ‘혁신의 나이키’
2021년 11월 177달러에 달했던 나이키의 주가는 CEO 교체 발표 전날인 18일 80.66달러를 기록했다. 나이키는 지난 6월, 올해 3~5월 실적을 발표했는데, 매출이 126억달러(약 16조8336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하는 등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스포츠용품 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러닝 열풍으로 호카·온러닝 등 신흥 브랜드는 호황을 누리고, 전통의 라이벌인 아디다스·뉴발란스·아식스 등도 실적이 대폭 개선되며 “전성기를 맞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반면 나이키에 대해선 “요즘 누가 신느냐”는 조롱까지 나오고, “나이키 본사가 있는 미 포틀랜드 러닝 클럽에서도 나이키를 신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시장에서는 도나호 현 CEO가 나이키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1월 나이키 CEO로 취임한 도나호는 신발 판매 방식을 확 바꿨다. 오랫동안 소매 업체 계약을 맺어온 풋라커, DSW, 메이시스 등에서의 판매를 줄이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판매하는 비율을 늘렸다. 코로나 시기 대면 구매 대신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면서 도나호의 전략은 통하는 듯했다.
문제는 코로나가 진정되고 나서도 같은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판매를 통한 데이터 수집에만 집중하면서 나이키의 상징이던 ‘혁신’과 ‘스토리텔링’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신제품은 자취를 감췄다. 뉴욕타임스는 “도나호는 혁신가나 마케터의 면모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새 수장은 ‘32년 나이키 맨’
도나호와 달리 새로 나이키를 이끌 힐의 이력은 출발부터 끝까지 오직 ‘스포츠’였다. 힐은 텍사스크리스천대에서 운동학을 전공하고 오하이오대에서 스포츠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힐은 1988년 인턴을 거쳐 나이키에 입사해 2020년 소비자 시장 부문 사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2년 동안 나이키에서만 일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나이키를 떠난 해에 도나호가 CEO로 취임했다. 힐은 소셜미디어(링크트인)에 “나이키에서 19개의 다른 임무를 맡았다. 달리기, 하이킹, 사이클, 스키, 플라이피싱을 즐기고 직접 만든 야구팀에서 야구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나이키가 CEO 교체를 통해 큰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UBS 매니징 디렉터인 제이 솔은 “경험이 많은 힐이 나이키를 성장의 길로 다시 돌려놓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나호 이전에 나이키 CEO를 지내고 현재 나이키 이사회 의장인 마크 파커는 “힐은 나이키가 성장의 다음 단계로 가는 걸 이끌 적임자”라고 했다. 나이키는 11월 9년 만에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경영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