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악단 멤버를 넘어… 이젠 명문 음대 가르치는 ‘K클래식’
한국 야구와 축구 선수만 메이저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로 가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 명문 음대에서도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이 ‘스카우트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음대 교수들이 미국 음대로 ‘역수출’되고, 연주자 개인만이 아니라 실내악단을 통째로 영입한다. 해외 명문 악단에서 활동하는 한국 단원들이 현지 음악원에서 연주와 강의를 병행하고,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미 음악원에서 ‘악파(樂派)’를 이루는 경우도 생겼다.
①'교수님 실내악단’ 탄생
미 명문 샌프란시스코 음악원은 최근 실내악 수업 전담을 위해 현악 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을 영입했다고 밝혔다. 2018년 영국 위그모어홀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 콰르텟은 현재 멤버 4명 가운데 3명이 한국 연주자다. 기존 이 음악원 교수였던 디미트리 무라스(비올라) 외에 팀 리더인 배원희씨도 바이올린 교수로 임용됐다. 최근에는 멤버 하유나(바이올린)씨와 허예은(첼로)씨도 실내악 수업을 맡게 됐다. 이처럼 한국 실내악 팀 전체를 통째로 영입하는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에스메 콰르텟은 올해 2학기부터 이 음악원에서 실내악 강의를 맡는 동시에 미국 연주 활동도 늘려갈 계획이다. 배원희씨는 “우리 실내악단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연주와 강의를 병행할 수 있어서 기쁘다. 샌프란시스코 등 미 서부 지역에서 매달 연주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했다.
②악단과 강단 병행
미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종신 수석인 김유빈(27)씨도 최근 같은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17세인 2014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이듬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영재 출신 연주자. 2016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수석으로 들어간 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로 자리를 옮겨서 화제를 모았다. 김씨는 “음악원에서 미래의 연주자들을 가르치는 일은 오랜 버킷 리스트(생전에 하고 싶은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보스턴 심포니의 첼로 단원인 이정현씨 역시 필라델피아의 명문 커티스 음악원 교수로 임용됐다.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 김상윤씨도 미네소타 음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악단과 강단을 넘나들면서 이론과 실기를 아우르는 한국 음악인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박선희 전 국립심포니 대표는 “빈 필하모닉이나 베를린 필 같은 해외 명문 악단에서는 수석과 단원들이 해당 도시의 음대에서 음악 영재들을 가르치는 일이 정착한 지 오래”라며 “‘교수냐 연주자냐’라는 기존의 이분법이 깨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③교수 역수출 시대
최근에는 해외 명문 음대로 곧바로 직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미 인디애나 음대 교수로 임용된 피아니스트 한지호(32)씨가 대표적이다. 2014년 독일 뮌헨 ARD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올랐던 그는 지난해 타계한 명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1923~2023)의 후임으로 임용됐다.
국내 음대에서 해외 음대로 ‘역수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59) 서울대 교수가 인디애나 음대, 피아니스트 최희연(56) 서울대 교수가 피바디 음대 교수로 각각 임용되어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서울대에서만 두 기악과 교수가 나란히 미국 음대로 진출한 셈이다. 명성과 실력이 뒷받침되면 정년과 관계없이 사실상 평생 고용을 보장하는 ‘종신 교수’ 제도가 정착한 것도 미 음악원의 장점으로 꼽힌다.
④미 음악원의 ‘한국 악파’
미 보스턴의 명문 뉴 잉글랜드 음악원에서는 한국 피아노 악파(樂派)가 생겼다.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렸던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1930~2023)과 변화경(77) 부부 교수의 제자들이 같은 음악원에 잇따라 교수로 임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이 음악원 교수로 부임한 피아니스트 백혜선(59)씨에 이어서 지난해에는 손민수(48)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같은 음악원으로 옮겨 갔다. 손 교수의 제자인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 역시 스승을 따라서 뉴 잉글랜드 음악원으로 진학했다. 이 때문에 변화경·손민수·임윤찬의 ‘사제 3대’가 같은 음악원에 둥지를 트게 됐다.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한국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콩쿠르와 무대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한국 음악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 커졌다”면서 “해외 음대도 앞으로 차세대 음악인들의 유학지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국경 없는 경쟁’이 벌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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