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7] 의자
의자
갈참나무 허리에
연선아 좋아해, 하고 새기는 일이나
원고지에 몇 자 적는 일이나
본질은 같다
의자 모서리를 움켜쥐고 그때 그 자리에
다시 노을이 젖어오고
나는 더 우회적으로 이 일을 생각한다
어떤 기적이 있어
기대앉은 의자에 새잎이 돋고
수맥이 흐르고
나는 둥둥 떠서
기어이 너에게 갈 수도 있다
-박철(1960-)
이렇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다. 첫 사랑의 푸르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 그는 의자를 유심히 바라본다. 의자는 낡은 정물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어쩌면 의자는 갈참나무를 켜서 만든 의자일지도 모른다.
갈참나무에는 “연선아 좋아해”라는 사랑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 해질녘에는 노을이 축축하게 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수많은 계절이 흐르고 지나가는 것을 보아왔다. 그는 정물인 의자가 다시 활물(活物)로, 갈참나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파릇한 새잎처럼 새뜻하고, 두근거리고, 빛이 많아 찬란하고, 속마음이 둥둥 높게 떠서 가던 그 첫사랑의 때로, 순수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묻는다.
박철 시인은 시 ‘소년에서’를 통해 그때의 어린 자아를 나무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멀리 대지에, 대지를 향하여, 대지를 이루고/ 너는 너 하나로 가득 자유와 생명을” 가꾸며 살라고 말한다. 내게도, 모든 이들에게도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은, 어린아이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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