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이루지 못한 장기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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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2일 새벽 별세했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학생·노동·시민운동에 헌신한 그는 구소련 붕괴 후 제도권으로 간 재야의 동지들과 달리 "내가 추구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진보정당 운동을 고집했다.
그는 "당시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의무로 여겼다. 돈으로, 그것도 국민이 낸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우리의 명예는 뭔가"라며 지원을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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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앗간을 운영하던 그의 부모는 가난했다. 4남 2녀 중 막내인 고인만 겨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서울대 법대 진학 후 민청학련 및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 등으로 12년간 수배생활을, 9년간 옥살이를 했다. 간첩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인사 가운데 가장 오랜 수배생활과 옥살이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의무로 여겼다. 돈으로, 그것도 국민이 낸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우리의 명예는 뭔가”라며 지원을 사양했다.
말년에는 국회의원 특권폐지 운동에 매달렸다. 그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누리는 특권이 186가지나 된다고 꼬집었다. “국회의원이 많은 특권을 누리며 살면 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패한다”고 일갈했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실질 연봉은 세비, 후원금 등을 모두 합쳐 5억원이 넘는다. 반면 그의 월수입은 국민연금과 베트남 참전 수당 등을 모두 합해 220만원 정도였다.
고인은 지난 7월17일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여야가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뤄 나라와 민생을 거덜 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물극즉반’(物極則反·극에 도달하면 원위치로 돌아온다)을 기대했다. 그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 개혁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치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가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영원한 청년이요, 혁명가였다. 그의 기원대로 이 나라 정치에 대반전이 일어나길 바라며, 장 원장의 안식을 빈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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