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에 앞서 ‘우물 안 나 자신’부터 파악하라[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돌이켜보면 회사의 분위기는 추석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이전까지 정신없이 바빴다가도 추석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느슨해졌고 곳곳마다 온갖 소문들도 솔솔 피어났다. 주로 연말에 있을 임원 인사며 조직개편에 관한 이야기였다.
첫째, 나 자신을 알라. 나는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그동안 직장인은 업무를 잘해야 하며, 개인보다는 팀에 집중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들었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 위해 혼자만의 주장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현실이 이런 탓에 의외로 나란 사람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내 지위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퇴직 후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여기에서 비롯된 스스로에 대한 오판이었다. 나는 내 커리어 하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나 정도의 업무 능력이면 모두 앞다퉈 모셔갈 줄 알았다. 하지만 절대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퇴직하자마자 도전했던 거의 모든 곳에서 나는 실패를 거듭했다. 내가 고작해야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회사 밖에서의 나는 회사 안에서의 나와는 전혀 달랐다. 현 상태 그대로 뛰어들어도 될 정도로 세상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둘째, 조급해하지 마라. 나는 발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해 왔다. 오직 실행력만이 목표에 이르는 최고의 방법이라 배웠고, 직장인으로서의 자질도 실적과 진취적인 태도에 의해 평가받았다. 그렇다 보니 눈앞에 할 일이 쌓이면 부담스럽다가도 정작 일이 없어지면 왠지 불안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랄까. 조직에서 도태될까 봐 조바심이 난 적도 많았다. 분명한 계획도 없으면서 일단 손과 발이라도 움직여야 차라리 속이 편했다.
퇴직 후 나를 힘겹게 했던 것도 이점이었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기 위해 학원 서너 개 과정을 동시에 듣고, 제안서와 이력서를 무수히 보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 와중에 찾은 게 자영업이었다. 사업하면 잘할 거라는 가까운 동료들의 말도 믿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결심하고 영업장을 오픈하는 데 3개월, 사업자등록부터 인테리어 공사까지 짧은 기간 전력을 다했지만 1년도 못가 결국 폐업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조급한 마음은 큰 손실만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셋째, 과거를 잊어라. 나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 줄곧 상위 고과를 받았고 주요 요직에서만 근무했다. 동료들을 상대로 우수사례 발표도 여러 번 했으며 후배들에게는 사내 강사로서 이름도 날렸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은 그야말로 최고인 것 같았다. 어떠한 경쟁자를 만나더라도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과거에도 그러했듯 나의 미래도 찬란하게 빛날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퇴직하고 곧이어 직장생활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그 덕분에 강의할 기회를 몇 차례 얻었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 나름의 일잘러로 인정받았던 터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뒤늦게 원인을 분석해 보니 내 강의 내용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코로나 후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했고 젊은 친구들의 세대 특성도 참작하지 못했다. 나의 자랑이었던 직장생활이 더 이상 나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을 때 또 한 번 좌절했다.
아쉽게도 나는 이 모든 깨달음을 시행착오 속에서 터득했다. 그사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고 다방면에 막심한 손해도 보았다. 이유는 내가 진짜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퇴직 후 마주하는 두 번째 세상, 그것은 첫 번째 삶의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다. 단어만 첫 번째 다음의 두 번째일 뿐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었다. 따라서 직장인이었을 때의 장점이 퇴직자에게는 오히려 반대로 작용할 수 있었다.
퇴직 후에는 내가 가진 강점과 약점, 처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성급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자세로 준비되었을 때 한 발 한 발 내디뎌보자. 나를 알고 퇴직 후의 세상을 안다면 백전무패가 아닐까. 부디 다른 분들은 나와 같은 뼈아픈 실패를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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