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노동자’ 관련 법률 있다지만…지원 사업은 제자리

조선우 2024. 9. 22. 21: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BS 전주] [앵커]

1960년대부터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건너가 젊음을 바친 노동자들.

그들이 송금한 돈은 우리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됐지만, 아직 그들을 위한 지원 사업은 부족합니다.

조선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스물아홉 살부터 꼬박 삼 년을 독일의 탄광에서 보낸 한감열 씨.

좁은 갱도에서 몸을 구부린 채 무거운 장비를 들고 일하다 보니 몸 곳곳이 상했습니다.

[한감열/전 파독 광부 : "이런 경사진 데서 탄가루에 미끄러지고 또 일하다가 위에서 탄이, 돌이 떨어져요. 그러면 손 같은 게 다치고…."]

모국으로 돌아온 한 씨는 허리 통증에 시달리다 2010년 척추 수술을 받았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한감열/전 파독 광부 : "아픈 데가 있어요. 기관지가 좀 안 좋고 그 다음에 척추, 척추 때문에 평생 시달렸어요."]

독일의 한 외과병원에서 간호사로 1년 일하고 귀국한 김혜선 씨.

김 씨는 최근 아직 치료가 필요한 파독 노동자들과 만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있습니다.

파독 노동자를 지원하는 법과 조례가 있지만 피부로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큽니다.

[김혜선/전 파독 간호사 : "후유증이 있는 분들은 의료비도 좀 지원해 줬으면 좋겠고 구체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볼 때 정부에서 너무 이거 무관심했던 것 같아요."]

정부는 파독 노동자를 지원하고 기념 사업을 하는데 매년 1억 2천만 원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념 사업이 법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겨우 2년 전이고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1965년부터 10년 동안 파독 노동자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1억 백 53만 달러.

경제 발전의 틀을 닦는 밑거름이 됐지만 그들의 노고를 기리고 상처를 보듬는 일은 제자리걸음입니다.

KBS 뉴스 조선우입니다.

촬영기자:신재복

조선우 기자 (ssun@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