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금리인하, 정부가 해야 할 것들
금리인상 시기 놓쳤던 연준 이번엔 빅컷 대응
정부, 금리인하 원한다면 경기상황 명확히해야
풍선효과·자영업자 위한 맞춤형 지원 준비 필요
한은, 연준 사례 따라 '매파적 금리인하' 검토를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2022년 1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의 대담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내가 틀렸다”고 고백했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상승을 두고 둘은 정반대의 의견을 폈다. 크루그먼은 일시적, 서머스는 지속적이라는 입장이었다. 크루그먼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하는 서머스를 “바보(idiot)”라고 했지만 치솟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해 6월 미국의 CPI는 9.1%까지 폭등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반성문이 이때쯤 나왔다.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라며 제로금리를 최대한 유지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CPI가 8%를 넘어서자 “인플레이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더 잘 알게 됐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이 사건은 1970년대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불러온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 이래 최대의 정책 실패라는 평가를 받는다. 월가 최고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한 것은 연준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나흘 전 연준의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에서는 이번에는 실기하지 않겠다는 파월 의장의 의지가 엿보인다. 직전까지 시장은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포인트 인하할 확률이 조금 더 높다고 봤다. 0.5%포인트를 내릴 경우 미국 경제가 안 좋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은 과감하게 인하 폭을 키웠다. 두 번의 실수는 피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한국은행에 쏠린다. 연준이 선제적으로 움직인 만큼 한은도 다음 달 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은의 생각은 어떨까. 중앙은행 문법으로 보면 다음 달 금리 인하는 쉽지 않은 게임이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계대출과 집값 상승세가 둔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9월 한 달치뿐이다. 최소 두 달은 봐야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데이터가 부족하다. 실제로 최근 20년간 추석 다음 달에 가계대출이 증가했던 해가 80%다.
던져 놓은 것도 많다. 한은이 12일 발표한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는 지금의 상황이 과거 4차례 부동산 가격 급등기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갑자기 유턴 하기에는 10월 회의(10월 10~11일)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 미국이 최고 연 5.5%까지 금리를 인상할 때 3.5%까지밖에 안 올려 인하 여력이 부족한 것도 부담이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의 금리 인하는 10월이냐 11월이냐다. 큰 차이가 없으니 안전하게 11월에 조정해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어차피 내릴 것이라면 10월에 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금리가 한은만의 숙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금리 인하를 원한다면 정부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경기에 대한 인식 통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다섯 달째 내수가 회복 조짐이라고 한다. 정부는 경기가 어떤지 국민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는데 금리를 내리는 것은 모순 아닌가.
둘째, ‘2차 풍선 효과’ 대비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확대 실시와 은행의 대출 규제로 이달 가계빚 증가세가 어느 정도 꺾였다. 그러나 막힌 대출 수요는 은행에서 2금융권으로, 다시 대부업과 사채로 뻗어 나간다. 금융 당국이 한 발 앞서 대부업과 사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맞춤형 지원이다. 금리 인하에 따른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재정과의 정책 믹스가 생명이다. 나랏빚을 크게 늘리지 않는 선에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넷째, 침묵이다. 정부는 금통위 전후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대통령실과 정부가 압박하면 인하할 수 없는 게 독립성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의 속성이다.
한은 역시 연준이 선제적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침체를 피하기 위한 보험에 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최대한 신중해야 하지만 정부의 확실한 대출 관리를 전제로 ‘매파적 금리 인하’ 카드를 검토해볼 필요성이 한은에도 생겼다.
김영필 기자 susop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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