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 장기표 원장 암투병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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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간 재야에서 민주화 및 노동운동을 주도한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오전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1990년에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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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 투옥 민주화 유공자 신청 안해
50여 년 간 재야에서 민주화 및 노동운동을 주도한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오전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지난 7월 16일 페이스북에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물심양면의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1945년 경남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김해로 이사, 한림초·진영중학교와 마산공고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으로 있으면서 박정희 삼선개헌 반대운동을 주도한 고인은 고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학교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사건 등으로 수배와 투옥생활을 반복했으며 1984년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 창립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9년의 투옥과 12년의 수배생활을 하고도 민주화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고, 배상금도 일절 받지 않았다.
1990년에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14~16대 국회의원 선거, 2002년 재보궐, 이어 17·19·21대 총선 모두 낙선했다. 22대 총선에서도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했지만 원내에 입성하지 못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며 국회의원 면책·불체포특권과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유족으로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 보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장기표 선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장례를 진행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장기표 선생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셨다. 장기표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유족에게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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