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비만약’ 개발자 3인, ‘미국 노벨상’ 래스커상 받았다
‘미국의 노벨 생리의학상’이라고 불리는 래스커상 수상자로 비만 치료에 혁명을 불러온 연구자 3인이 선정됐다. 래스커 재단은 19일 조엘 하베너(Habener·87) 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교수, 스베틀라나 모이소브(Mojsov·77) 미 록펠러대 교수, 로테 비에레 크누센(Knudsen·60) 노보노디스크(덴마크 제약사) 최고과학고문을 2024년 래스커상 임상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젭바운드 등의 기반이 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을 발견하고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세계적으로 9억명 이상이 비만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비만 환자들의 고통을 줄였다는 것이다. 래스커상은 의학 분야 최고 권위의 상 중 하나로, 수상자 중 상당수가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거머쥐었다. 이들이 인류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다음 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미 이 물질로 약을 개발한 제약사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GLP-1 계열 약으로만 185억달러(약 24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젭바운드를 개발한 미국의 일라이릴리는 세계 시가총액 10위 안에 진입했다.
◇비만 치료 새 시대 열다
이번 수상자들이 연구한 GLP-1은 인간의 장에서 음식을 소화시킬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의 분비는 억제한다. 혈당을 조절하고 식욕을 줄여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가 있지만, 체내 반감기(물질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3분 정도로 짧다. GLP-1을 모방해 반감기를 대폭 늘려 체내에서 오래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 위고비나 젭바운드 같은 GLP-1 계열 약들이다.
조엘 하베너 교수는 1980년대 GLP-1을 최초로 발견한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미 하버드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 임용돼 인슐린과 당뇨병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학계에서는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환자에게 공급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많았지만, 그는 오히려 혈당을 높이는 호르몬인 글루카곤에 집중했다. 글루카곤을 만드는 유전자를 억제하면 혈당도 낮아진다는 발상이다. 1982년 그는 아귀의 췌장에 있는 유전자에서 글루카곤과 유사하지만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는 GLP-1을 발견했다. 하베너 교수는 “당뇨병 환자에게 혈당을 조절하기 위한 인슐린 주사를 맞히는 대신, GLP-1을 투여해 신체가 스스로 인슐린을 만들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펩타이드 합성 시설을 이끌던 모이소브 교수는 GLP-1의 아미노산 서열을 확인하고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모이소브는 GLP-1의 단백질 사슬의 37마디 중 첫 6마디가 잘려나간 뒤에야 활성화된다는 것을 밝혔다. 또 이렇게 짧은 GLP-1이 장에서 분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실험실에서 합성해냈다. 그는 1987년 하베너 교수와 함께 GLP-1이 쥐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1992년에는 GLP-1이 인체에서도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 수치를 낮춘다는 것을 확인했다.
GLP-1이 몸속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약물로 만든 것은 크누센이다. 1996년 그는 쥐의 뇌에 GLP-1을 주입하자 동물의 음식 섭취량이 줄어든다는 논문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비만과 당뇨병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하지만 GLP-1이 체내에 들어가면 혈액 속에서 3분 만에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크누센은 GLP-1에 지방산을 붙이는 방식으로 ‘GLP-1 유사체’를 만들었다. 이 유사체는 반감기가 13시간에 달했다. 이것이 삭센다의 원료가 되는 리라글루타이드라는 성분이다.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반감기를 165시간까지 늘린 세마글루타이드가 발견됐다. 당뇨 치료제 오젬픽,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원료다. 레스커 재단은 “하베너, 모이소브, 크누센은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과체중으로 ‘웰빙’을 위협받는 수많은 사람의 건강을 변화시켰다”고 했다.
◇노벨상까지 가나
세계 수많은 사람의 당뇨병을 치료하고, 비만 치료의 역사를 바꿨다는 점에서 GLP-1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들이 래스커상을 받으면서, GLP-1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래스커상은 1945년부터 기초의학 부문, 임상 부문, 공중보건 부문에 기여한 의학자들에게 매년 시상되는 권위 있는 상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1945년부터 수여된 래스커상 수상자 400여 명 중 95명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의 기반을 닦아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 바이오앤테크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지난 2021년 래스커상을 받았다.
올해 래스커상 기초의학 부문 수상자는 포유류 체내에서 면역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제임스 첸 텍사스대 교수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콰라이샤 압둘 카림과 살림 압둘 카림 교수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가 전파되는 경로를 연구해 공중보건 부문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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