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최소한"에 담긴 절박함

김기석 2024. 9. 2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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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경제부장·정책부문장
서민경제에 또 하나의 부담이 더해진다. 전기요금 인상이다.

23일 한국전력공사의 4·4분기 연료비조정단가 발표를 시작으로 전기요금 인상 작업이 본격 시작된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으로부터 조정단가를 제출받고 물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논의를 거친 후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에서 전기요금을 최종 결정한다. 이달 중에는 전기요금 인상분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전력의 올해 상반기 기준 총부채 규모는 203조원, 하루 이자만 120억원 이상이다. 이자가 많이 나간다고 해도 그 이상 돈을 잘 벌면 된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수익성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2021년 2·4분기 이후 3년간 41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당장 상장폐지는 물론 청산에 대한 요구까지 나왔을 수준이다. 그러나 할 말은 있다. 물가상승으로 힘들어진 서민경제를 고려해 생산원가 밑으로 전기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최근 물가는 잡히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다. 지난 2021년 3월 1.9%를 기록한 뒤 3년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정부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물가상승률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고 있으니 가격인상을 단행할 호기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다.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서민경제가 위축되고 있다.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4분기 기준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흑자액(실질)은 월평균 100만9000원. 1년 새 1만8000원(1.7%) 줄었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과 이자·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뺀 금액이다. 가계 흑자액은 2022년 3·4분기부터 8분기 연속 줄었다. 2006년 1인가구를 포함해 가계동향이 공표된 뒤로 역대 최장기간 감소다.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 일반용 전기요금 체납액은 785억원가량, 전년 동기에 비해 40% 가까이 급증했다. 체납건수도 24% 이상 늘었다. 장사가 안 돼서 전기료도 내지 못한 '사장님'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아예 문을 닫는 자영업자도 계속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6만4000명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줄었다. 지난해 9월 이후 12개월 연속 혼자 장사하던 사장님이 줄어든 것이다. 경기가 좋으면 직원을 채용, '나 홀로 사장'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지만 최근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문을 닫았을 확률이 더 높다.

앞으로의 경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7월 경기순환시계에 따르면 핵심지표 10개 중 서비스업생산지수, 소매판매액지수 등 7개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이들 7개 지표는 지난 5월 이후 3개월 연속 하강·둔화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가스, 대중교통, 상수도 요금 인상도 예정돼 있어 가계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더 늦출 수는 없다는 게 한국전력의 입장이다.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달 기자들을 만나 한 말이다. 대세가 된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56조원 이상의 투자자금 확보가 필요한데 현재의 요금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소한'이라는 말에서 김 사장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서민들이 힘든 것은 알지만 더 늦으면 전체의 미래가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의 전기료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법을 제기하고 있다. 모든 관계자들이 만족할 만한 해법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결단을 미룰수록 미래를 준비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해본다.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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