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도시 영도, 멈춰 선 안된다

황경민 시인·가수이자 영도주민 2024. 9. 22. 19: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황경민 시인·가수이자 영도주민

나는 솔직히 ‘문화도시’라는 말이 중언부언이라 생각한다. 도시든 농촌이든 사람 사는 곳이면 기본적으로 경제·문화·정치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문화’라는 수식어를 덧붙여 도시를 명명하는 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다가, 눈속임식의, 이벤트성의 포장술, 화장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식의 용어가 대세고,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무작정 나만 싫다고 뻗댈 일도 아니긴 하다.

필자 황경민 씨가 지난 20일 부산 영도구청에서 영도문화도시를 지지하며 노래하고 있다.


내가 사는 영도는 5년 전 ‘문화도시’로 선정되어 국가 예산(문화체육관광부)을 받아 민간에서 ‘영도문화도시센터’를 운영했다. 그 사업이 올해로 종료되는데 영도구청에서는 나 몰라라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그 적확한 평가는 잘 모르겠지만, 영도에서는 영도문화도시센터를 중심으로 지난 5년 동안 구민과 예술가, 구민과 연구자, 구민과 문화기획자, 도시기획자들이 서로 어울려 많은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따로 흩어져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문화도시’ 사업을 계기로 서로 협업하고, 산복도로, 깡깡이 마을, 흰여울 마을, 동삼동 등지에서 어르신들이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들고, 함께 노래하고,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술이 생활을 만나고, 마을은 예술가를 만나고, 예술가는 어르신과 아이들을 만나 서로 사귀면서 예술가가 주민이 되고, 주민이 예술가가 되는 공동체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이 생활과 동떨어진 게 아니구나, 예술이 공동체와 일상 없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구나, 예술과 문화는 공동체와 생활 속에 있는 거구나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지난 5년간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영도는 새로운 ‘문화도시’로 태어날 수 있는 노하우와 플랫폼, 그리고 인적 자원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구청에서 이 모든 걸 포기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영도구민들이 나섰다. 그동안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구축된 노하우와 인프라, 그리고 플랫폼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영도, 아이들이 가장 적은 영도, 사람들이 가장 이사 오기 싫어하는 영도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일상적으로 흐르는 영도, 예술가와 주민이 서로 돕고 사는 이웃인 영도,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놀 수 있는 영도, 어르신들이 죽음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삶을 사는 영도, 죽음을 준비하는 영도, 세대 간의 단절이 아니라 세대와 상관없이 어울려 사는 영도를 만들어 가기로 결정했다.

‘문화도시’ 사업의 경험과 성과와 노하우를 버리는 게 아니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제 ‘문화도시영도’는 중앙정부만의 일도, 부산시만의 일도, 영도구청만의 일도 아니다. 영도구민과 예술가, 민관, 기업과 소상공인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자 오늘의 마을-어르신들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마을을 넘어 미래의 마을-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노는 미래의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동안 영도구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온 문화도시 영도의 성과가 계승되고 이어질 수 있도록 영도구청의 전향적인 정책과 구민과의 대화(공청회 및 포럼, 신문고 운영 등), 예산 배정을 촉구한다. 구청은 오로지 구민의 충만한 삶, 보람된 삶, 행복한 삶, 즐거운 삶을 밑받침하기 위해 있는 기관이다. 만약 구청이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문화도시 영도를 지키는 시민대책위원회’는 부산시민과 전국의 ‘문화도시’ 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연대함으로써 작금의 상황을 타개해 나갈 것이다. 영도구청의 사려 깊은 결정을 영도구민과 예술가, 그리고 관계기관의 많은 사람이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편집자주=최근 영도구청은 지난 5년간 진행한 영도문화도시 정책을, 법정기한인 올해 말까지만 운영하고 ‘일몰’한다는 방침을 세운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이 사업에 관심 있는 영도 주민은 문화도시 영도를 지키는 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