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운명' 손에쥔 몬테네그로 법무장관 선택은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씨의 운명을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이 결정하게 됐다.
몬테네그로 대법원이 지난 19일(현지시간) 권씨의 범죄인 인도 사건을 보얀 보조비치 법무부 장관에게 이송했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권도형의 범죄인 인도 요건은 충족됐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범죄인 인도 허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사건을 법무부 장관에게 이송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대검찰청의 적법성 판단 요청을 수용해 하급 법원에서 확정됐던 권씨의 한국 송환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 자체를 법무부로 이관한 것이다.
권씨의 미국행을 주장한 전임자와 달리 보조비치 현 장관의 의중은 드러난 적이 없다.
그는 지난달 8일 법무부 보도자료를 통해 "범죄인 인도 문제는 법무부 장관의 통상적인 업무 중 하나로 누구든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만 밝혔다.
이어 "권도형의 범죄인 인도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권씨를 특정 국가로 인도할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전 법무부 장관이 권씨와 유착한 밀로코 스파이치 총리가 권씨의 미국행을 조직적으로 방해한다고 주장하자 이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낸 것이다.
밀로비치 전 장관은 당시 "스파이치 총리는 권도형과 유착 관계에 대한 미국 사법당국의 수사를 막기 위해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막으려 한다"며 "그는 이 사실을 국민에게 숨겨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밝히는 등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권씨의 미국행을 고수했던 인물로, 스파이치 총리와 갈등을 겪으며 지난 7월 경질됐다.
미국행을 되도록 피하려는 권씨로서는 유리한 '반전'이 일어난 셈이다.
대법원은 4월5일에도 범죄인 인도국 결정 권한이 법원이 아닌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는 대검찰청의 적법성 판단 요청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에서 "범죄인 인도를 놓고 두 국가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법원의 의무는 피고인에 대한 인도 요건이 충족되는지만 판단하는 것"이라며 "범죄인 인도 허가나 우선순위 결정은 법원이 아닌, 관할 장관이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하급심에서 확정됐던 권씨의 한국 송환 결정을 무효화하고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하지만 하급심에서 또다시 권씨를 한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결정하자 이번에는 사건 자체를 법무부 장관에게 넘겨 법무부 장관이 직접 권씨의 범죄인 인도 여부와 인도국을 결정하도록 했다.
그동안 하급심인 항소법원은 법원이 권씨의 인도국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단해왔다.
대법원으로선 이번에도 사건을 파기 환송할 경우 하급심과 상급심의 엇갈린 판결이 반복되면서 권씨의 범죄인 인도 문제가 더 장기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일 대검찰청으로부터 적법성 판단 요청을 받은 뒤 같은 달 8일 권씨의 한국 송환을 잠정 보류하고 법리 검토에 착수한 대법원은 한달여의 '장고' 끝에 사건을 법무부 장관에게 이송했다.
권씨는 테라폼랩스 창업자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권씨는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로 넘어왔고, 지난해 3월 23일 현지 공항에서 가짜 코스타리카 여권을 소지한 채 두바이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됐다.
당시 함께 검거됐던 한창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월 한국으로 송환됐다.
한씨는 한국에서만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기 때문에 쉽게 결정됐지만 권씨는 한국과 미국 모두가 인도를 요청하면서 그가 검거된 지 1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최종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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