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폭염속 땀흘려 가꿨는데…한 순간에 모두 물거품 됐어요”

김광동 기자 2024. 9. 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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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 경남 김해 농작물 피해 심각
벼, 시설작물·노지채소류 상당면적 타격
농민들, “대규모 개발공사가 피해 키웠다”
부산 강서구 대저2동에서 대저토마토를 생산하는 이재혁씨가 22일 빗물이 가득찬 하우스안에서 토마토 모종을 근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다.

“찜통 더위를 견뎌내며 자가 육묘에 나선 보람이 모두 물거품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를 못 내겠네요.”

부산 강서구 대저2동 정관마을(일명 솥뚜껑마을)에서 시설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재혁씨(44)는 이번 ‘극한호우’로 육묘중인 토마토 모종을 모두 버려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며 22일 오전 취재진에게 이렇게 허탈감을 드러냈다. 비닐하우스 16개동에서 부산의 명품 특산물인 ‘대저토마토’를 재배하는 이씨가 씨앗을 구입해 자가 육묘에 나선 것은 지난 9월7일. 이씨는 파종한 씨앗에서 싹이 돋자 20일 좀더 넓은 포트에 옮겨심었다. 오는 10월20일경 본밭에 정식, 내년 1월 하순께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종을 옮겨심은 지 단 하루만인 21일 저녁, 이씨 하우스는 ‘물폭탄’을 맞고 육묘중인 모종을 모두 버리게 됐다. 이씨는 “‘대저토마토’는 씨앗 1알 가격이 280원이나 할 만큼 비싸다”며 “육묘에 들어간 상토·인건비 등을 합하면 피해액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대저토마토를 재배하는 농가 대부분이 이번 비로 피해를 입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저토마토는 부산 강서구 대저1·2동에서만 재배하는 토마토로,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돼 있다. 류태윤 대저농협 조합장은 “대저토마토 농가 가운데 상당수가 1월 중·하순께 조기출하를 위해 자가육묘에 들어갔거나 정식을 마쳤는데, 이번 비로 큰 피해를 봤다”며 “피해 농가는 다시 육묘에 나서거나 재차 정식에 나서야 해 그만큼 작기가 늦어지고 출하물량이 일시에 몰리는 2차 피해도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농민 김명록씨가 부산 강서구 봉림동의 물에 잠긴 대파 밭을 가리키고 있다.

이 곳과 지척 거리에 있는 강서구 강동동과 봉림동 일대에서도 벼를 비롯해 대파·감자·배추 등 대부분의 농작물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서종수씨(74·강동동)는 “종자용으로 쓸 감자와 대파·양상추를 심고 수확철만 기다렸는데, 난데없는 큰 비를 만나 모두 못쓰게 됐다”며 “재차 정식을 하려해도 작기를 놓쳐 올 가을농사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명록씨(64·봉림동)도 김장철에 출하할 대파 밭 5950㎡(1800평)가 모조리 물에 잠긴 것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생육중인 대파가 물에 한번 잠기면 썩는다고 봐야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경남 김해 대동면의 한 화훼재배 시설하우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빗물이 들어차 있다.

부산 강서구 대저1·2동, 강동동, 봉림동은 김해평야 지대에 속한 부산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부산에는 21~22일 이틀동안 400㎜(대표 관측지점인 중구 기준)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강서구 지역 농경지 상당수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 피해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강동동 관계자는 “월요일인 23일부터 본격적으로 피해 접수를 받기 시작하면 정확한 피해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비가 그친 후 현장을 둘러보니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인근 경남 김해지역도 벼가 쓰러지고 밭작물이 침수되는 등 부산과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비닐하우스가 밀집된 김해 대동면의 경우 화훼류를 비롯해 배추·무·대파·가지 등 채소류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대동농협이 22일 오전을 기준으로 대동면일대 농경지 피해 규모를 조사한 결과 화훼류 55㏊, 채소류 41㏊, 과실류 27㏊ 등 199㏊에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대동농협은 21일 한때 대중지점 하나로마트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정창호 대동농협 조합장은 “농로 침수, 도로 통제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조사한 결과여서 실제 피해 면적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번 비로 김장철 채소류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21일 침수 피해를 입은 대동농협 대중지점 하나로마트.

한편 이번 비로 부산 강서구 대저1·2동과 강동동, 봉림동 등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상당수 농민과 기관·단체 관계자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인 ‘에코델타시티’ 건설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 측에서 대형 트럭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 물길을 막고 간이 다리를 놓는 바람에 배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22일 오전 김주홍 부산 강서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의원과 피해 농민 등은 대저2동 정관마을회관 앞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에코델타시티 공사 업체 측 관계자는 “현재 제기된 문제 시설에 대해 현장을 확인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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