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한표 전쟁' 시작됐다…"불법이민 막아야" vs "여성들 권익 지켜야"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내 딸들을 위해서 중산층을 대변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팀 마조타, 민주당 지지자)
"국경을 통제하고 범죄자들을 엄격하게 다룰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꼭 돼야 합니다."(익명 요청, 공화당 지지자)
오는 11월5일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 버지니아·사우스다코타·미네소타 3개 주에서 지난 20일부터 대면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지난 11일 앨라배마 주에서 우편 사전투표를 시작한 데 이어 대면 투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대선일까지 치열한 '한 표 전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2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행정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아침부터 발길에 끊이지 않았다. '트럼프·밴스'와 '해리스·월즈'를 적은 팻말이 투표소로 향하는 길목부터 즐비하게 꽂힌 가운데 양당 지지자들은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 천막을 마련하고 유권자들에게 막판까지 한표를 당부했다.
민주당은 하늘색, 공화당은 연두색으로 된 종이를 나눠줬다. 각각 대선 후보는 물론, 이번 선거에서 함께 뽑아야 하는 상·하원의원과 지역 정치인들의 명단을 일목요연하게 자신들의 당을 중심으로 정리한 '커닝페이퍼'였다. 어떤 색 종이를 받아 가는지만 보아도 유권자의 지지 정당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날 대면 사전투표를 시작한 3개 주 중에서 버지니아와 미네소타는 민주당, 사우스다코타는 공화당 지지 지역으로 각각 분류된다. 이날 만난 이들 중에서도 민주당 지지자가 좀 더 많았지만, 공화당 지지자의 비중도 상당히 높았다. 일부 지지자들은 기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왜 내가 트럼프를 지지하는지"를 오랫동안 설명하고 가기도 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사회가 보다 안정되고, 치안이 강화되며, 보수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자메이카 출신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메리온 리처드슨 씨는 "동독 출신으로서 나는 미국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물드는 꼴을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스라고 밝힌 중년 여성은 "가톨릭 신자로서 낙태에 반대한다"며 "트럼프 덕분에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연방대법원 판결이 폐지됐고, 그 판결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화당 천막을 지키고 있던 한 여성은 "미국 정부가 사회적·재정적으로 더 보수적으로 가야 한다"며 "지금 민주당이 하는 방식의 정 반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부터 공화당을 지지해 왔는데, 지금의 공화당은 너무 민주당처럼 바뀌었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그는 "더 싸워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중산층 경제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경제 이슈를 해리스 부통령이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지지자들이 많았다. 최근 해리스 캠프가 경제정책을 잇달아 발표한 데 따른 영향인지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 남편 팀과 두 딸을 데리고 투표소를 방문한 코트랜드 마조타 씨는 "해리스는 백만장자를 위한 게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경제정책을 펼 것"이라며 "아동지원 정책 등에서도 해리스가 우위"라고 주장했다.
동생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멜라니 씨도 "해리스의 경제 정책은 '골드만삭스가 만든 것처럼' 매우 좋다"며 "긍정적인 내용을 많이 언급하는 것도 해리스를 지지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3인 가족은 지지후보를 묻자 "말할 수 없지만,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쪽"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지지정당을 이미 결정하고 온 듯이 보였으나 한 20대 남녀는 투표소 앞 벤치에 앉아 양당의 유인물을 살펴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는 투표소로 향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47개 주는 사전투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사전투표를 언제 하는지, 언제 개표하고 어떤 표를 유효하다고 집계할지 등에 관한 기준은 주마다 제각각이다. 이달 중 대면 사전투표를 시작하는 주는 20일에 시작한 버지니아·사우스다코타·미네소타 외에 버몬트·일리노이 등 총 5개다. 경합주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는 당초 지난 16일부터 대면 사전투표를 할 계획이었으나 지난달 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언하고 선거운동을 중단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의 이름을 투표용지에서 뺄지 여부를 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일정이 늦어졌다.
나머지 42개 주는 10월에 사전투표를 받는다. 앨라배마·미시시피·뉴햄프셔는 사전투표제 없이 우편투표 및 제한적인 부재자 투표만 실시한다. 아이다호도 일부 카운티는 사전투표제를 하지 않는다.
대면 사전투표 비중은 가파른 상승세다. 코로나19 영향이 컸던 2020년 대선에서는 이 비중이 69%까지 올랐다. 2022년 의회 선거에서는 이 비중이 47%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전체 투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사전투표 비중이 높아질수록 대선에 임박해서 뒤집기는 힘들어진다.
내달 1일 부통령 후보 토론이 예정된 가운데, 유권자들의 관심은 ‘2차 TV 토론’ 성사 여부에 쏠리고 있다. CNN 방송이 제안한 내달 23일 2차 토론 계획에 대해 해리스 캠프는 참가하겠다고 밝혔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21일 유세에서 “(투표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양측의 지지율은 여전히 팽팽한 상태다. 선거 승리 여부를 가르는 경합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조사기관에 따라 일부는 해리스 우위, 일부는 트럼프 우위로 혼재되어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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