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라! 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심정택 칼럼니스트 2024. 9. 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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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욱 작가의 《흐르는 시간 속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

(시사저널=심정택 칼럼니스트)

최근 수년간 심승욱 작가(52)의 작업 흐름은 '시간, 속도, 기억, 망각, 얼핏 지나는 삶의 순간'을 표현한다. 작가는 2년여 전 경기도 남양주 퍼플스튜디오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과 뼈다귀해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수도권 외곽의 레지던시 주변은 식당, 카페 등 인프라가 취약했다. 손님과 동행하거나 작가들끼리 들른 식당의 메뉴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시 텔레비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뉴스가 나왔다. 작가는 무심히 기름과 빵값이 오르는 걸 걱정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심승욱 개인전 인터뷰에 동행한 임준선 사진기자가 각목 프레임에 화사한 단열재 아이소 핑크를 소재로 제작한 작품들에 대해 묻자, 작가는 핑크 소재와 관련해 뉴스를 접했을 때 해장국에 든 뼈다귀에 붙은 고기라고 언급했다. 필자는 뼈다귀가 무기로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영화 《황해》를 다시 보았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뇌는 스크린이다'라고 했다.

심승욱 작가 ⓒ심정택 제공

작가는 생존을 위한 '먹다!'라는 행위에도 폭력성이 내재되었다고 본다. 우리가 소비하는 일상이 마치 '픽! 팝! 푸!'(Pick! Pop! Poo!)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 《흐르는 시간 속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은 '먹다' 혹은 '식사' 행위를 포함한 투영된 사회적 모습을 표현했다. 지난해 전시에 걸었던 회화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2022년 전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익숙함》부터 세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일관된 작업 패턴을 읽을 수 있다.

"정치나 예술 혹은 우리의 일상 속 모든 경험에는 '새로움' 속에 자리한 알 수 없는 '익숙함'이 병치되어 있다. (…) 질병, 전쟁, 빈부 격차…수많은 혼란과 불안정의 현실 앞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나 익숙한 인간의 시간이 또 흘러간다."《작가노트2022》

지난 시간 속에 남겨진 5개의 군상, 압축단열재 발포 우레탄폼 미송구조목 비닐 가변설치 2024 ⓒ심정택 제공
구조-뼈에 붙은 살같이, 미송구조목 압축단 열재 아크릴 187ⅹ570ⅹ83cm 2024 ⓒ심정택 제공

일상에 숨겨진 폭력성을 드러내다

조각 예술은 재료를 계속 확장해 왔다. 작업실 주변에 흔한 각목을 이번 전시 작품에도 활용했다. 심승욱은 "(이번) 전시는 관객이 알 필요가 없는 대상을 모티브로 삼았기에 메시지를 이해하고 파악하라고 한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작가는 전시를 하면 작품 의미에 대해 질문 받는다. 아쉬운 것은 의미의 이해라는 감각 영역으로 수용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현대미술은 작가에게 신나게 떠들어보라고 한다. 그건 마치 수학 문제를 접하자마자 답안지를 뒤적이게 하는 행동 같다"고 밝혔다.

심승욱은 2007년 미국 시카고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8년 미국 시카고에서 '검은 중력', 2009년 독일 쾰른,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사유의 경계를 허물다' 전시를 이어갔다.

부친은 어쩌다 보는 손주에 대한 애정이 유난하셨다. 해외에서 이어오던 작업과 전시 무대를 국내로 옮기기로 한 이유다. 부친은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나셨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운명을 체험해 보지 않았음에도 그 죽음이라는 유령에 이끌려 미래로 나아간다.

심승욱은 인간 사회의 존재론적 인식을 서양미술사에서 가져온다. 1909년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는 르 피가로에 "세상이 속도의 아름다움으로 더욱 풍요로워졌다"로 시작하는 마니페스토(Manifeste du futurism)를 발표하며 과학기술을 예찬하는 미래파의 탄생을 알렸다. 미래파는 가톨릭 전통에 얽매여 낙후된 이탈리아 사회, 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모드라케의 여신상(일명 승리-니케-의 여신상)보다도 달리는 기차가 더 아름답다"며 속도와 역동성을 중시했다. 사모드라케는 에게해 북쪽에 있는 섬이다.

필자는 심승욱 작가를 처음 인터뷰한 2022년 6월 "(불과 수개월 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식사를 하는 일상이 무감각과 바꿔야 하는 거룩한 투쟁인지를 자문했다"고 썼다. 두 번째 인터뷰를 한 2023년에는 "심승욱이 본 세상의 모습은 불안정하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같은 경악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도 우리 사회는 금방 잊는다. 삶 자체가 무언가에 떠밀려 가고 있다. 그러한 실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고 적었다.

과거를 부인하고 미래를 개척할 것을 꿈꾸면서 전쟁을 찬양하던 미래파의 미학은 1914년 세계 1차대전 발발 이후 점차 사라지게 된다. 미래주의 선언은 다다이즘 등 새로운 전위주의 선언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철기에서 디지털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시대를 100여 년 전과 비교하고 있다. 이번 전시 대표 작품 《승리의 여신》을 평소와 다른 감각으로 인식하고 작업한 것은 분명하다. SNS에 의미를 명확하게 밝힌다. "허무함은 이 작품의 뼈대이며 고전의 아름다움을 껍질 벗겨 기계적 뼈대를 드러낸 것은 우리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짜릿한 감정과 감각에 매몰되어 사는가를 보여준다."

"내 작업은 크게 서사와 비서사의 구조 가운데 자리한 모호함과 양립되지 않은 모순의 유희 속에 있다. 아름답고도 추한, 그림자이면서도 실체이기도 한 세계, 감상적이라 단정하기엔 현실일지도 모를 모든 것들을 기록한다."《작가노트 2023》

이번 전시를 앞둔 어느 날 밤늦게 차를 운전하며 들은 음악 방송에서 밴드 넥스트의 보컬 고(故) 신해철이 부른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의 가사가 와닿았다.

심승욱은 기획자이기도 하다. 2024년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총감독 고동연과는 2020년 《새벽의 검은 우유》를 공동 기획했다. 2021년 서울 평창동 수애뇨339 개관 기념전으로 코로나 팬데믹과 일상을 다룬 《우주전쟁 그리고 시에스타》에 기획자이자 작가로 참여했다. 2022년 말 작품을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39인전 《띵작! 팔릴레오!》를 기획했다.

심승욱 전시 《흐르는 시간 속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10월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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