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LG도 위험…C커머스 ‘2차 공습’, 지방 상권까지 붕괴할 것” [언박싱]
“‘테무·알리’ 의존 심화 속 지방 경제 붕괴, 실업 급증 우려”
“최악의 경우 C커머스-쿠팡-네이버 3강 구도 펼쳐질 것”
“패스트패션 넘어 중국산 가구·가전까지 韓점령 가능성”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한국인이 C커머스(중국계 이머커스)에서 햇반을 주문하고, 한국 화장품을 사는 일상.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앞으로 C커머스가 메이디 같은 가성비 뛰어난 중국산 스마트 가전·가구까지 판다면요?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한국 대기업들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20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경제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C커머스가 지금 이대로 간다면 제조업 기반의 지방 상권 붕괴, 실업률 상승은 물론 한국 경제에 파괴적인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인터뷰는 저서 ‘알테쉬톡의 공습’ 출간에 맞춰 진행됐다. 알테쉬톡은 C커머스 대표 업체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틱톡샵을 일컫는다.
박 교수는 현재 상황을 B2C(기업 대 소비자 거래)를 넘어 B2B(기업 간 거래)까지 영향력이 확산된 ‘C-커머스의 2차 공습’ 단계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최근 계속된 위해·불량 상품 논란은 수입 물량이 늘면서 생기는 문제로 현상의 핵심이 아니”라며 “향후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 네이버, C커머스만 살아남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게 본질적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국 법인을 세운 알리익스프레스를 필두로 C커머스는 매섭게 한국 유통 시장에 파고들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올해 1월~7월에 한국 소비자들이 C커머스에 사용한 금액은 2조3000억원 수준으로 전년 연간 결제 추정 금액을 사실상 넘어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해외 직구 제품들의 주 수입 관문인 평택세관의 해상 특송 화물 반입 건수는 2019년 152만건에서 올해 약 5298만건(1~12월 추산치)으로 약 35배 급증했다.
빠른 성장의 배경에는 10년 넘게 이어진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다. 중국 정부는 국무원 판공처을 통해 2013년 ‘국경 간 전자상거래 소매 수출 지원 정책 의견’이라는 문건을 발표한 후, 금융·세제·물류 등 다방면에서의 세부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박 교수는 “중국은 육상·해상 경제권을 잇는 국가 발전 계획인 일대일로 사업에 인터넷을 더한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으로 중장기적으로 세계 크로스보더(CBT, 국경 간 전자상거래) 시장의 표준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실천하는 C커머스에게 한국 시장은 세계 이커머스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박 교수는 주장한다. 한국을 거치면 절대적인 물류비를 아낄 수 있어서다. 그는 한국이 초저가 상품 외에도 경쟁력 있는 중국산 도소매 제품이 북미, 동남아 등 제3국 시장으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쟁력 있는 제품에는 프리미엄 제품, 검증된 가성비 가전 등도 포함된다.
박 교수는 “알리익스프레스는 빅데이터에 기반해, 1인 와인 냉장고 같은 인기 있는 제품을 자사가 지은 한국 내 물류 센터에 전략적으로 배치하겠지만, 결국 이 물류 센터는 알리바바그룹의 저장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물류 센터는 알리바바닷컴·1688닷컴 등 알리바바그룹의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올해 정부에 낸 사업계획서에서 한국 현지 협력 파트너와 함께 연내 18만㎡(약 5만4000평, 축구장 25개 규모)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2억달러(약 2632억원)라는 투자 규모도 제시했다. 다만 부지 선정 등 논의가 지연되며 알리익스프레스는 내년 상반기에 해당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C커머스의 확산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 지역 농가나 중소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 한국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국내 기업은 알리익스프레스가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와 1000억 페스타 등 판매촉진 이벤트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여개 국가에 진출해 있는 알리익스프레스를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로 삼자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박 교수는 C커머스가 가진 파괴력을 염려한다. 중국 업체의 ‘샤오첸(燒錢·돈을 불태운다)’ 전략이 대표적이다. 샤오첸 전략은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중국 기업들이 쓰는 마케팅 방식이다. 시장 선점을 위해 초기 적자를 감수하고 연간 수조원 단위의 비용을 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는 “테무만 해도 올해 미국 미식축구리그인 슈퍼볼 경기 한 회에만 30초당 약 93억원의 광고를 무려 6번 내보냈다”면서 “C커머스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끈질기게 이어나가며 기존 경쟁자의 자리를 넘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이미 C커머스의 공습으로 온라인 통신 판매기업, 개인 쇼핑몰의 소상공인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면서 “치열해진 경쟁 속 중견·중소 오픈마켓 적자 경영이 심화되면 중국 자본이 국내 이커머스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지속된 고물가 속 소비력이 약한 저소득층, 청소년층, 1인 가구 등울 중심으로 초저가 제품 선호도가 높아진 데다, 직구 상품를 재판매하는 병폐까지 더해져 상황이 악화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직구는 개인이 소비에 책임을 진다는 전제 하에 면세가 된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당근마켓 등 중고 시장에 판매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면서 “정부는 불법 유통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함께 면세 논의 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입법 등을 통해 C커머스를 규제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현지시간) 테무, 쉬인과 같은 C커머스의 저가 제품 수입이 급증하자 무역법 301조·2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 관련 면세 규정을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심화되는 C커머스의 공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박 교수는 “정부는 중국 제품 입점 시 중국 내 안전 인증이라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 선택권, 한국 제조사 및 수입 유통사의 생존을 지킬 수 있다”면서 “제품 추적관리시스템 같은 대책은 필수”라고 말했다. 제품 추적관리 시스템을 통해 최초 판매자에 대한 책임 추궁의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박 교수는 “기업은 ‘퍼플 카우(purple cow)’를 늘려 희소하면서도 소구점이 분명한 브랜드를 키워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퍼플카우는 시선을 잡아끄는 이슈가 될만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뜻한다.
또 C커머스의 성장으로 설 자리를 잃는 유통업체들이 늘면 인수합병이나 폐업을 통해 이커머스 업계의 재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유통업계의 합종연횡(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것)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플랫폼별 독자적인 차별점이 없다면 결국에는 위메프 사태보다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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