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섭의 ‘소’는 어떻게 탄생했나

이유진 기자 2024. 9. 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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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통영 시절 이중섭 다룬 김탁환의 장편 ‘참 좋았더라’

2020년, 김탁환 소설가를 만나러 전남 곡성으로 간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는 이례적인 집필 의뢰를 했다. ‘비운의 천재’ 이중섭(1916~1956)의 경남 통영 시절에 관한 소설을 써달라고 한 것이다. 김 작가는 4~5년 정도를 기다릴 수 있냐고 되물었고, 정 대표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참 좋았더라’(남해의봄날 펴냄)는 김탁환의 32번째 장편소설로 ‘이중섭의 화양연화’를 그렸다. ‘황소’ ‘흰 소’ ‘달과 까마귀’ ‘부부’ ‘도원’ 등 그의 걸작 대부분이 통영에서 탄생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중섭은 도쿄, 원산, 부산, 서귀포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배우자 이남덕과 두 아들 태현과 태성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았다. 특히 1953년 11월부터 1954년 5월까지는 통영에서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빌런 같은 지인에게 사기당해 진 빚도 그림을 그려 갚아야 했다.

통영이 걸작의 탄생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통영엔 미술가 유강렬이 주도해 설립한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가 있었고, 중섭은 통영의 예술 사랑방이었던 이곳을 중심으로 화가 전혁림, 박생강, 김용주, 시인 김춘수 등과 교유했다. 천석꾼의 맏손자 김용주는 특히 중섭을 아꼈다. 지인들의 후원과 예술적 자극 덕에 중섭은 “그림 지옥”에 빠져들었고 절정의 작품을 쏟아냈다.

이 소설의 가치는 예술가로서 이중섭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하고도 ‘잃어버린 고리’를 곡진하게 되살려낸 데 있다. 화가가 통영에서 자연과 사람들의 돌봄 속에 예술혼을 불태웠듯 작가 또한 통영의 ‘자원’을 바탕 삼아 작품을 완성했다. 치밀한 취재를 가능하게 한 것은 통영 사람들의 애정과 역량이었거니와, 자기 생을 온전히 예술에 바친 가엾고 애달픈 한 사내를 긍휼심과 사랑으로 재현한 것은 작가의 덕이고 오롯한 성취다.

일상을 찢어놓은 피란살이 3년을 거쳐 이중섭이 통영에서 “진혼의 화양연화”를 이룩했다는 김탁환의 평가는 이 고장이 걸작을 낳은 고통과 환희의 산실이었음을 재확인한다. 소설가 스스로 “예술가로서 나는 어디까지일까” 몰아붙이면서 질문하고 집필했듯, 중섭은 자신의 기량과 열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운명에 맞섰다. “전쟁, 이산, 외로움,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 모든 적”에 맞서, 있는 힘을 끝까지 그러모아 꿈틀거리는 이중섭의 소가 통영에서 탄생했다. ‘통영 소설’이 탄생했다. 312쪽, 1만95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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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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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일체’라는 손글씨는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그 얼마나 간결한 진리의 메뉴였던가.” 권여선의 유일한 산문집 ‘오늘 뭐 먹지?’(2018) 특별 개정판. 책 말미에 ‘21이 사랑한 작가들’ 인터뷰를 재수록했다. “늙은 주정뱅이의 세계가 얼마나 매혹적인 비참의 경지인지 독자들이 알게 만들고 싶다”는 기개를 다시금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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