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놔? 말아? ~씨를 붙여야 하나?” 까칠한 이치로도 큰 고민…남자의 호칭 문제
[OSEN=백종인 객원기자] 두말하면 숨만 가쁘다. 이치로는 일본 최고의 스타다. 물론 요즘은 오타니에게 살짝 밀린 느낌이다. 하지만 일세를 풍미한 레전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월드 스타가 은퇴 후에 몰두하는 일이 있다.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헌신이다. 전국의 초중고교를 돌며 게릴라식으로 야구 교실을 차린다. 연습 배팅을 하면서 (멀리치기로) 교실 창문을 깨는 일도 자주 있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여고생 팀과 겨루는 게임이다. 자신이 조직한 팀 ‘고베 치벤’을 이끌고 1년에 한 번씩 정기전을 치른다.
허투루 하는 동네 야구가 아니다. 장소는 무려 도쿄돔이다. 여기에 공중파 TV 중계가 붙는다.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된다. 웬만한 프로야구 시청률보다 높게 나온다는 후문이다.
출장 멤버도 장난이 아니다. 2년 전부터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합류했다. 메이저리그 출신만 2명인 셈이다. 물론 아무리 마쓰자카라도 투수 자리는 언감생심이다. 유격수로 만족해야 한다. 그 팀에 붙박이 에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구단주와 감독을 겸하는 이치로가 절대 공을 넘겨주지 않는다. 1회부터 9회까지 혼자 다 던진다. 허리를 삐끗해도, 종아리 근육통이 올라와도. 중간에 포기란 없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끝까지 간다. 그게 이 게임이 추구하는 정신이다.
세 차례 경기의 스코어는 1-0(2021년), 7-1(2022년), 4-0(2023년)이었다. 이치로는 3년 연속 완투승(완봉 2회)을 거뒀다.
그런 정기전이 23일 열린다. 게임을 이틀 앞두고 훈련이 한창이다. 조금 늦게 절대자(구단주 겸 감독)가 등장한다. 선수들 모두 부동자세로 맞는다. “오늘도 제대로 합시다.” 이치로의 구호로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된다.
러닝, 스트레칭이 끝났다. 막간을 이용한 휴식 시간이다. 이치로가 마쓰자카 쪽으로 다가간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스파이크로 갈아 신으며 나누는 대화다.
이치로 “다이스케(마쓰자카)는 마쓰이를 부를 때 ‘마쓰이 상(씨)’ 하면 되지? 그런 걸 보면 후배는 편해. ‘마쓰이 상’으로 끝이잖아. 난 어려워.”
마쓰자카 “아~, 네.”
새로 들어오는 동료 얘기다. 요미우리와 뉴욕 양키스를 거친 마쓰이 히데키가 올해부터 고베 치벤에 합류한다. 23일 여고 선발팀과 경기에도 출전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두고 호칭 문제를 고민하는 장면이다.
이치로 “뭔가 어려워. 동갑이면 괜찮은데, 1살 차이는 쉽지 않은 거야. 그렇다고 ‘히데키(마쓰이의 이름)’라고 할 수도 없고….”
마쓰자카 “그러게요. 마쓰이 상을 ‘히데키’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치로 “미국이면 히데키 아냐?”
마쓰자카 “오랜만에 만나시는 건가요?”
이치로 “(마지막으로 본 게) 내가 양키스에 있었을 때였나….”
이치로는 1973년 10월 22일생이다. 마쓰이는 조금 늦다. 1974년 6월 12일에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현재는 50세 동갑이다(이치로의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학년으로 따지면 1년 차이다. 고교 졸업 연도나 드래프트(프로 입단)도 그렇다.
하지만 딱히 교류는 없었던 것 같다. 이치로가 말한 ‘양키스 시절’도 그렇다. 그가 뉴욕에서 뛰던 시기(2012~2014년)에는 마쓰이가 그곳에 없었다. 2009년 뉴욕에서 나와 LA 에인절스로 이적했다. 이후 오클랜드, 탬파베이를 거쳐 2012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하다못해 대표팀에서도 만난 적이 없다. 마쓰이가 WBC 때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쓰자카 “그냥 자연스럽게 ‘히데키’로 하시죠? 그럴 때 마쓰이 상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네요.”
둘이 함께 빵 터진다.
이치로 “맞아. 마쓰이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히데키’라고 부르면 되는 거 아냐?”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까칠한 대스타가 모처럼 개그 모드로 돌입한다.
이치로 “그건 말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고질라(마쓰이의 별명)’라고 부르면 어떨까. ‘고지 씨’는 없지? ‘질라 씨’. 이건 좀 새롭지 않아?”
듣던 마쓰자카가 키득거리며 쓰러진다. 그러나 상대는 꽤 심각하다. “’마쓰이 상’ 이것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음…. 이거 꽤 어려운 문제네.” 걱정스러운 표정을 어쩔 수 없다.
한편 이치로는 이번 경기에서 51번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작년까지 3년동안은 에이스의 상징 1번을 달았다. 그런데 올해는 현역 시절 등번호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마도 곧 51세 생일을 맞는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 같다.
/ goorada@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