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실외기 뒤에 황조롱이 5형제 살아요 [임보 일기]

박임자 2024. 9. 2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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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맴맴맴매~앰" 드디어 매미가 땅에서 나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온 거지요.

여름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미 소리 때문에 잠도 설친다지만 매미를 좋아하는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 아파트로 출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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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오늘도 매미가 우는 아파트로 출근해볼까~.” 황조롱이가 에어컨 실외기 난간에 앉아 깃털을 정리하고 있다. ⓒ박임자 제공

“맴맴맴맴매~앰” 드디어 매미가 땅에서 나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온 거지요. 여름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미 소리 때문에 잠도 설친다지만 매미를 좋아하는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 아파트로 출근을 합니다.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매미는 사냥하기도 쉬운데 참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등 종류도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요. 직박구리와 곤줄박이, 새호리기처럼 매미를 좋아하는 경쟁자도 많지만 매미는 언제나 넘쳐나니 크게 경쟁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호매실(경기도 수원)에 있는 이 아파트가 고향이에요. 새끼도 이곳에서 길렀고 먹이도 아파트에서 자주 찾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원래 너희가 살던 자연으로 가서 살지 왜 우리 인간이 사는 도시로 오느냐고 불편하다고요. 저도 그러고 싶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살던 공간에 큰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살던 산이며 들판이 점점 줄어들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더부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둥지로 삼던 자연 속 둥지가 사라지면서 우리같이 집을 못 짓는 황조롱이에게는 까치가 은인이에요. 까치가 둥지를 얼마나 꼼꼼하게 잘 짓는지, 실외기에 지은 둥지는 사람들에게 발각만 안 되면 몇 년이고 둥지로 쓸 수 있어요. 게다가 까치는 무료 임대사업자로 유명하지요. 튼튼하게 둥지를 짓고도 한번 사용하면 다시 쓰지 않아서 그런 둥지를 하나 알게 되면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에요. 까치가 실외기에 둥지를 지은 것도 사람들이 여름에 시원하게 살려고 집집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지구는 더 더워졌대요.

아파트 실외기 뒤에 지은 새 둥지. ⓒ박임자 제공

올해도 까치가 20층 실외기에 지어놓은 묵은 둥지 덕분에 5형제를 길러낼 수 있었어요. 운 좋게 3년째 이곳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데, 누가 이사를 가면서 실외기를 떼어가거나 까치가 지어놓은 둥지가 집주인에게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계속 이 둥지를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럴 때 보면 사람들이 주변에 관심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3년째 사용하고 있는데 집주인은 한 번도 발코니 창문을 열어보지 않았어요. 설사 발각되었더라도 새끼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한번 쳐다보기만 하면 스르르 녹아 스스로 집사가 되어 고기를 사다 매일 먹여주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어요.

우리가 허락을 받고 세를 내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공짜로 살지는 않아요. 도시 아파트는 깨끗해 보여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쥐가 참 많거든요. 쥐를 좋아하는 우리는 보이는 대로 잡아먹는데 우리가 없다면 아마 도시는 쥐 천국이 될지도 몰라요.

옛날에는 그야말로 산이고 들판이고 밭이어서 우리가 살아가기 참 좋았는데, 지금은 온통 아파트 천지예요. 그래도 아직은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황구지천이랑 주변에 논이 좀 남아 있어서 어린 새들이 논 구경이라도 하고 그곳에서 쥐랑 곤충을 잡아먹지만 그나마도 그곳에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어서 다음 세대에는 논을 구경이나 할 수 있을지···. 우리만의 일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좀 알아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저는 오늘도 매미가 우는 아파트로 출근합니다. 조금 있다 만나요!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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