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승 할리팩스 "수행이 삶 바꿔…화 다스리려면 뿌리를 봐야"
"학살에서 누구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러시아·우크라 전쟁에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화의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분노를 이해하면 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국의 선승(禪僧)이며 의학자, 명상 전문가인 로시 조안 할리팩스(82)는 현대인이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때로는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거기에는 우리와 분리된 자아가 있다는 망상이나 무지가 있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그는 "뉴멕시코의 교도소에서 사형수를 위해 일하면서 분노가 깊은 무력감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며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이 분노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하는 '2024 국제선명상대회'(9월 27일∼10월 1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할리팩스는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명상과 수행, 환경 문제나 전쟁 등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1966년부터 60년 가까이 수행을 이어온 할리팩스는 대중적으로 명상과 수행을 가르치고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수행이 내 삶을 바꿨다"고 단언했다.
할리팩스는 명상이 길이와 상관없이 유익하고, 일상이 바쁘더라도 명상을 병행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실천을 권했다. 아울러 명상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달으라고 당부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히 자신의 발전이나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 혹은 영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만 명상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타인을 이롭게 하려는 동기가 건강한 명상의 핵심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권하는 이유가 "고통을 완화하고 현실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 우리가 어떤 존재나 사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할리팩스는 한국 선불교를 세계 각국에 전파하는데 헌신한 숭산스님(1927∼2004)의 제자이기도 하다. 숭산스님과는 1975년에 처음 만났다.
"매우 뛰어나고 열정적인 스승이었고 많은 훌륭한 제자들이 있었지요. 수행은 매우 엄격했지만, 말씀은 생동감이 넘쳤어요."
'마음챙김 명상법'의 창시자인 존 카밧진 박사 등과 함께 숭산스님을 은사로 모신 할리팩스는 숭산스님이 유머 감각이 넘치는 분이었고 옛 선사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줬다고 회고했다.
한국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심각한 저출생에 직면했고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를 웃도는 등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에 관해서도 할리팩스는 조언했다.
그는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이라는 삼학을 포함해 법(法·부처의 가르침)을 탐구하는 것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팩스는 수십 년 동안 죽음에 직면하거나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이들을 위해 봉사해왔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 인생이 매우 명확해진다"며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했다.
죽음을 직시하면 타인에 대한 연민이 커지고 삶의 기쁨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사는 것, 사랑·연민·정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세상은 물론 우리 자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할리팩스는 기후 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도 불교가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역설했다. 특히 명상은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것이며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환경 파괴적인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할리팩스는 "불교 신자로서 전쟁과 대량학살이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부처님은 비폭력을 가르쳤다"며 "전쟁에서 아무도 얻지 못하고, 끔찍한 대량 학살에서 누구도 이익을 얻지 못하며, 생태계 파괴나 환경에 대한 폭력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1942년생인 할리팩스는 1973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종합대학인 유니언인스티튜트&유니버시티에서 의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대 신학대학과 의과대학, 조지타운대 의과대학 등에서 죽음에 대해 교육했다. 1990년 미국 뉴멕시코주에 '우파야선센터'를 설립해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 활동을 실천하고 재소자나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에게도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할리팩스는 툽텐 진파, 차드 멩탄, 판루스님, 직메 린포체 등 해외 명상 전문가와 함께 조계종의 초청을 받아 국제선명상대회 참석차 한국에 올 예정이며 30일 부산 범어사에서 강연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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