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2049년은 아니니까, 이제 시작”… 앞으로를 바라보는 기후 활동가들
“함께해준 사람들 떠나지 않고, 새로운 이들에게 장벽 낮추려 해”
아래는 일문일답.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뒤 눈물을 흘렸는데 무슨 의미였나?
윤현정(윤)=‘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안도감에 눈물이 났다. 승소가 당연하고, 승소해야만 했지만, ‘진짜로 패소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다. 패소라면 현재 정부의 기후대응으로 기본권이 충분히 보호되는 수준이고, 이렇게 쭉 대응해나가도 된다는 암묵적인 인정이니까 이 상태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일부승소라 결정문 뒷부분으로 갈수록 눈물이 쏙 들어가긴 했는데, 기적적이면서도 아쉬운 양가적 감정이었다.
김보림(김)=어떤 감정인지 정의는 안 되는데 슬펐다. 이 결정을 기다리면서 당연히 위헌이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헌재 결정까지 (헌법소원 제기 후) 시간이 4년 넘게 흘렀고 그 사이 기후위기 심각성은 커졌고 사람들에게 개념도 익숙해졌으니 현재 기후대응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기다린 만큼 그 순간에는 패소한 게 아니란 걸 앎에도 (일부승소가) 슬펐다.
—결정문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 구절은?
김=헌재 결정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 말은 현재 정부 목표가 위헌은 아니지만, 완전히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목표를 없앨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 같다. 그래도 장려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렇게 실린 게 의미 있다.
윤=정부가 공개변론이나 제출한 서면자료에서 ‘기업의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실제로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비중을 줄이기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헌재는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여주면 오히려 감축을 더 더디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한다고 명시해서 뜻깊었다.
윤=정부 변호인단이 공개변론에서 했던 말 중 하나가 ‘아직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시작되지 않았다’였다. 미래에 기후재난이 발생한다면 정부가 그때 적응대책을 만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헌재는 완화조치와 함께 현재부터 적응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온실가스를 더 감축해야 적응 비용도 줄어든다고도 지적했다.
—아시아에서 기후 소송으로 위헌 결정이 처음 나왔다. 이번 결정이 주변 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윤=일본이 이제 기후 헌법소원을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이 판결을 낼 수 있던 배경은 독일, 네덜란드에서 승소한 판례가 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결정을 다른 나라에서 더 기뻐하는 것 같다. 한국이 판례 근거가 될 테니까 다른 아시아 국가 결정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김=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4년차에 한 해 동안 국민참여의견서를 준비했다. 헌법소원이 우리가 가진 가능성 중 가장 커보여서 모든 힘을 쏟아부었는데 이 길로 가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같았다. 그래도 기후 헌법소원을 제기하던 2020년에는 기후운동을 하는 사람도 얼마 없었고, 청구를 제안했을 때 다들 원고가 되기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우리만의 헌법소원이 됐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먼저 나선다.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옆에서 보니까 작은 변화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긴 한다.
김=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논의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설정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헌재 결정은 결국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가 안전한 삶을 살고, 존엄한 삶,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에 장기적으로 국가가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단 뜻이다. 내년이면 국가 기후대응의 기준과 방향을 다시 잡는 논의가 이어질 테고, 여름은 다시 또 매우 덥고 열대야와 폭우가 닥칠 것이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개인의 불가피한 일로 치부하지 말자’, ‘앞으로 내려질 결정이 재난 위험을 줄일지, 키울지 함께 지켜보자’는 말이다. 좋은 정치인의 등장을 기다리기엔 우리 삶이 이미 위태롭다. 우리 스스로 말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모아서 어떤 정치인이 의사결정하든 제대로 우리 의견을 다룰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윤=기후위기 관련한 소식은 좋은 일이 없다. 발전소를 짓든 공항을 새로 만들든, 개인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번 헌법소원이 사람들에게 성공의 경험이 되길 바랐고 변화의 사례로 기록되길 바랐다. 4년간 헌법소원 진행하면서 실효성을 느끼지 못해 힘들었지만, 그래도 해냈다. 일부승소지만 우리의 삶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을 국가기관이 인정한 것 아닌가. 앞으로도 기후 문제를 회피하기보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봤으니 계속 사람들이 함께해주면 좋겠다. 이제 시작이고, 올해가 2049년은 아니니까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았다. 함께해줬던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우리 편에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기후문제에 쉽게 다가오도록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고민 중이다.
글·사진=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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