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폼’ 안고 내달리는 토종 액션의 향연 《베테랑2》
차별화 성공한 시즌2…9년의 사회 변화 담아내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강력범죄수사대의 '주부도박단 검거'로 출발하는 오프닝은 영락없이 우리가 알던 9년 전 《베테랑》(2015)의 그 온도, 그 습도, 그 톤 앤 매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에 혼비백산한 도박단의 소란스러운 줄행랑을 카메라가 리드미컬하게 따라붙는 와중에, 1970년대 팝송 《예써, 아이 캔 부기(Yes Sir, I Can Boogie)》가 흥을 돋우고, 컷과 컷의 이음새에선 위트가 뿜어져 나온다. 여기에 유머를 품은 슬랩스틱 액션까지 즐기다 보면, 이것이 류승완의 《베테랑》이 맞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오프닝에서의 확신은 '속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프닝은 전작과의 연결을 잠시 돕는 맛보기였을 뿐, 영화는 슬슬 전작과는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편이 밀크초콜릿이라면, 2편은 다크초콜릿"이라고 전한 감독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작과 확연하게 다른 맛
법의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처벌받지 않은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경찰엔 비상이 걸리고, 대중은 동요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유튜브 채널 '정의부장TV'를 운영하는 박승환(신승환)을 위시한 사이버레커들이 조회 수 장사를 벌이기 시작한다. 급기야 죄가 명백한 이들만을 잡아 죽이는 연쇄살인범은 '해치'라는 이름을 얻고 영웅으로 떠오른다. 마침 임산부 살인을 저지르고도 심신미약을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살인범 전석우(정만식)가 풀려난다. 해치로부터 전석우를 보호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는 잠시 당황한다.
1편에서 명확한 '선과 악'의 구도 속에서 선이 승리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에선 카타르시스 이면에 숨은 복잡다단한 현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판단이 맞냐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쉽게 결론짓고 열광하는 건 아니냐고. 사이버레커들의 돈벌이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것이 당신들이 바라는 정의냐고.
실제로 1편과 2편 사이 9년간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열패감이다. 그리고 그 열패감 속에서 분노와 냉소가 자랐다. 그러니까 인터넷 자경단이 활보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9년 전처럼 카타르시스의 서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이러한 변화를 엄중하게 바라본다.
감독의 변화는 범대중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내비친다. 잠시 많은 이가 좋아했던 1편의 명동거리 액션 신을 떠올려보자. 절대 악인 조태오(유아인)와 서도철이 맞붙는 해당 신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군중은 말은 하지 않지만 '서도철 편'에 서있는 뉘앙스를 풍겼다. 아트박스 사장마저도 나서서 서도철의 편에 섰던 그 분위기 말이다. 2편에서도 카메라는 군중의 반응을 여러 번 담아낸다. 그러나 군중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이전과 달리 비관적이다. "나쁜 살인이 있고 좋은 살인이 있어? 살인은 그냥 살인이야." 해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향한 서도철의 일갈이 이를 방증한다.
연장선상에서 바라봤을 때, 《베테랑2》에서 시대의 변화를 우울하게 압축해낸 캐릭터는 해치가 아니라, 기자 출신 유튜버 박승환이다. 그가 파는 건 진실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에게 음모론은 돈을 창출하는 창구이고, 허상에 가까운 영웅은 대중의 눈과 귀를 멀게 해줄 돈줄이다. 그런 박승환에게 열광하는 대중을 통해 류승완은 진실이 흐려지는 현실을 걱정한다. 감독의 깊어진 우려만큼 영화가 어두워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1편의) 성공을 재탕하고 싶지 않았다." 검증받은 쉬운 길을 두고,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다짐엔 배짱이 있다. 흥행에서 소위 '대박 난 공식'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되풀이하는 충무로 시장에서 그의 이러한 용기는 반갑고 귀하다. 감독이라면 남들이 뭐라 하든, 독야청청 가는 맛도 있어야 하기에, '감독 류승완'의 결정을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더 좋은 결과물로까지 이어졌느냐고 묻는다면, 미안하지만 대답이 조금 망설여진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베테랑1》과의 차별화에는 확실하게 성공한다. 그러나 관객이 영화를 보는 기준점은 감독의 전작만이 아니다. 이미 공개된 콘텐츠 모두가 《베테랑2》의 비교 대상이다. 그랬을 때 '사적 처벌'을 다룬 콘텐츠는 《비질란테》(디즈니+), 《살인자o난감》(넷플릭스) 등 OTT에서 이미 집중적으로 다뤘기에 신선함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특히 사이버레커의 존재는 '화살촉'이라는 이름으로 연상호 감독의 《지옥》에서 깊게 다뤄진 바 있다. 《베테랑2》의 문제의식이 독창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다.
서도철의 성장과 류승완의 변화
초등학생 눈에도 공공의 적으로 보였을 법한 빌런 조태오와 달리, 2편의 빌런 박선우(정해인)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영화는 서도철과 '서도철의 거울'과도 같은 박선우의 대비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을 통해 "선과 악이 아니라 정의와 신념이 충돌하는 구도"를 그려낸다. 그러나 정해인의 연기와 별개로, 그가 연기한 박선우의 '신념'이 무엇인지는 희미한 편이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정신에 입각해 박선우가 어떤 인물인지 쉽게 단정하지 않은 건 좋은 선택이지만 인물 설계에 대한 섬세함이 부족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폭주하는 그에게 어떤 신념이 있다는 것일까. 끝내 찾지 못한 그 물음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베테랑2》에는 충무로 베테랑들이 줄 수 있는 명도 높은 즐거움이 다량 함유돼 있다. 특히 액션에선 불호를 허락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오프닝에서의 흥 가득한 액션뿐 아니라, 지형지물을 영리하게 이용한 남산 계단 추격 신, 슬라이딩이 춤추듯 이어지는 빗속 액션 등 수준 높은 그림들이 '멋'과 '폼'을 안고 역동적으로 내달린다. 맞는 사람의 아픔이 전해지는 듯한 생생함도 상당하다. 포만감 넘치는 액션의 향연이랄까.
무엇보다 이 시리즈엔 서도철이 있다. 딜레마를 겪으며 변모하는 서도철의 성장은 《베테랑2》의 핵심 중 하나다. 아들에게 "남자는 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서도철은 자신이 함부로 흘린 말이 덫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릇된 판단 앞에서 도망가거나 핑계를 찾지 않는다. 서도철의 변화를 통해 류승완 감독은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편보다 여러 면에서 어두워진 이번 편이 그럼에도 희망의 이야기로 보이는 건, 그러한 서도철의 변화가 맥락 있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짜게 끓인 라면'을 서도철 가족이 둘러앉아 한 젓가락씩 나눠 먹는 장면에선 삶을 긍정하고 싶은 감독의 태도가 엿보인다. '충무로 악동'으로 불리며 호쾌하게 영화판을 질주했던 류승완의 관심사는 이제, 자기 말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어른으로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