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물 새고, 어둡고 갈라진 올림픽코트…그래도 계산기만 두드리나요

김종석 2024. 9. 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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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 텅 빈 WTA500 하나은행 코리아오픈 개최장소인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센터코트. 대회 조직위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입니다. 서울시(시장 오세훈) 송파구(구청장 서강석)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제 나이도 어느덧 마흔이 다 돼 갑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지어졌으니 말입니다. 화려한 순간도 많았죠. 아시안게임 때는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휩쓸었습니다. 서울올림픽에서는 테니스가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뒤 슈테피 그라프(독일)가 우승을 차지하며 골든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죠.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여기저기 탈이 많아집니다. 14일 막을 올려 22일까지 열리는 여자프로 테니스(WTA)투어 하나은행(은행장 이승열) 코리아오픈을 맞이해서는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입니다.

20회째를 맞은 올해에는 WTA 500시리즈로 격상돼 시설 보완이 절실했습니다. 그런데도 관리 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과 그 산하 기관인 한국체육산업개발(대표 신치용)은 수수방관하며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과다한 사용료를 부과해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사진> 대회 주최측이 자체 경비 조달을 통해 개선한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의 화려한 조명. 테니스코리아 제공

세계 정상급 선수가 출전하는 WTA 500시리즈는 몇 가지 깐깐한 요구 조건이 있습니다, 센터 코트를 포함해 1,000명 이상이 관전할 수 있는 쇼 코트를 갖춰야 합니다. 야간 경기를 위한 조명도 기준을 넘겨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존 테니스 경기장은 둘 다 충족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울어야 젖을 준다고 했던가요. 울어도 젖을 주지 않더군요. 테니스 경기장 코트 바닥이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없는 수준이라 국민체육진흥공단에 공사 요청을 했으나 돌아온 건 지원 예산이 없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결국 대회 주최측은 2022년과 2023년 약 2억7000만 원을 들여 자체적으로 코트 바닥 공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공사비 지원 대신 코트 대관료 7000만 원 가운데 6500만 원을 감면받게 됐습니다. 

올해에는 대회 측이 관중석 보강 공사와 조명 공사 등으로 3억 원가량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대회 주최측으로선 지난해와 같은 대관료 감면을 기대할 만했으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한국체육산업개발 측은 코트 대관료와 부스 사용료 등을 합쳐 2억8000만 원 가량을 부과했습니다. 과거 7000만 원 정도였던 코트 대관료에 각종 업체 홍보 또는 관람객 편의 부스 설치에 따른 사용료 2억 원을 추가한 것입니다. 거액을 들인 조명시설은 대회 종료 후 철거하라고 했답니다. 

대회 관계자는 “몇 차례 대관료 감면을 받으면 조직위 측에서 낸 코트 공사 대금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뀐 뒤 여러 번 협의를 진행했으나 무료 대관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원홍 대회 조직위원장은 “올림픽 시설물을 사용해 위상 제고가 되는 체육행사는 무상대여할 수 있다는 공단의 조항도 있다. 과도하게 늘어난 코트 대관료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재고를 요청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방송,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센터 코트 바닥에는 ‘SEOUL’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한 서울의 랜드마크도 널리 알릴 기회입니다. 


<사진>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열기를 식히고 있는 하나은행 코리아오픈 출전 선수. 테니스코리아 제공

기상이변에 따른 9월 폭염과 짓궂은 가을비는 제 민망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했습니다.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기자실과 의무실 등 주요 사무실에 냉방이 되지 않아 더운 바람만 뿜어대는 선풍기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비가 내려도 대체할 실내 경기장이 없어 20일에는 모든 경기가 취소됐습니다. 대회 운영 사무실과 대한테니스협회에는 팬들의 항의 전화가 쏟아져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대회 주최측은 20일 예매권과 현장 판매 티켓을 모두 환불해 주기로 했습니다.

테니스 경기장 옆에는 2012년 건립된 실내 경기장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코트 표면이 다른 데다 방송 중계가 쉽지 않고 더욱이 티켓을 산 관중을 모두 수용하기가 힘들어 실내경기는 불가능합니다. 대회를 주최하는 JSM 이진수 대표는 “실내 경기장에 비까지 새는 바람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야간 경기가 많은 테니스대회 특성상 운영요원이나 기자들도 밤늦도록 근무할 상황인데도 경기장 관리원들은 퇴근이 늦는다며 빨리 불 끄고 나가라는 일도 발생했다네요. 

경기장에는 국내 관중뿐 아니라 외교사절, 외국계 기업 한국 주재원 등 외국인들도 상당수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휴지도 없고 악취가 나는 화장실에 아연실색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그렇게 많던 주차관리 요원들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 주차 한번 하려면 주차장을 몇 바퀴씩 돌아야 했습니다.


<사진>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전경. 테니스코리아 제공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체육산업개발은 코리아오픈 코트 사용료로 3억 원 가까운 금액을 청구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회 주최측 고위 관계자는 “경기장 리모델링과 코트 보강 공사, 조명 교체 등을 모두 자체적으로 했는데 지난해 500만 원이었던 사용료를 60배 가까이 넘게 받겠다고 하는 건 무리한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러한 한국체육산업개발의 행보는 ‘88서울올림픽 시설물의 효율적 유지관리, 복합문화 및 스포츠·레저공간 제공으로 국민 건강과 행복 증진, 수익사업을 통한 국민체육진흥 기금 조성에 이바지한다’라는 설립 목적과도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입니다.

대회 조직위가 국민체육진흥공단이나 한국체육산업개발과 오랜 시간 소통을 하며 협업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큰 잔치’를 앞두고 “지난해 그랬으니, 올해도 마찬가지로 감면해 주겠다”라는 안일한 의식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모처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열린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성공 개최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는 비난에서는 자유롭지 않아 보입니다.

어디다 내놓아도 흠잡을 데 없는 새로운 테니스 경기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테니스 팬의 염원이 아닐까요.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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