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 ‘세계 1위’ 한국·정책은 뒷전인 ‘팬덤 정치’, 그 극복방안은?[‘쌤과 함께’ 200회 특집]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KBS 1TV '이슈 PICK 쌤과 함께'는 22일 오후 7시 10분 ‘200회 특집 ’소멸과 생존’ 3부작 3부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 그 해법은?’을 방송한다.
2020년 8월 2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200회를 맞은 '이슈 픽 쌤과 함께'가 시청자들을 초청하여 ‘소멸과 생존’이라는 주제 아래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특집 3부작, 그 마지막 시간에는 날로 심각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양극화의 현실과 팬덤 정치의 특징과 폐해에 관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반복되는 여,야간의 대치로 정작 우선해야 할 민생은 뒷전이 되고 정쟁만이 남은 한국 정치, 이제는 반성과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국회 미래연구원이 발간한 ‘정치 양극화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연구진으로 참여한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와 함께 우리 정치가 양극화된 원인은 무엇인지,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본다. KBS에서 이재묵 교수의 강의를 요약해 보내준 자료는 다음과 같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현 상황은?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이 교수의 묵직한 질문이 강연의 시작을 알리고, 난처한 표정으로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패널들의 모습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들의 말장난처럼 정치인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상황을 볼 때마다 실망스럽다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표하는 방청객 장미경 씨의 답변은 정치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갈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대변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2022년 실시한 주요 국가 정치 양극화 실태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미국(2위), 이스라엘(3위), 프랑스(4위)에 앞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정치적 의견이나 이념이 극단적으로 나뉜 채 정치적 협력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 불신과 분열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통합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정당이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며 국회는 토론이 아닌 몸싸움이 우선인 ‘동물국회’, 정쟁 대결만 할 뿐 법안 처리는 뒷전인 ‘식물국회’ 등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이 교수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맞붙은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단 0.73%p의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린 것 역시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라고 말했다.
마냥 나쁘게만 보이는 정치 양극화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정치 양극화는 이념적 양극화와 정서적 양극화로 나뉘는데, 이념적 양극화는 양 진영의 정책 차이가 분명하고 유권자들의 선호 정당이 뚜렷하여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야 정당 간에 정책적, 이념적 입장 차이가 선명하지 않은 반면, 상대편에 적대적으로 반감을 가지는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된 양상을 보인다. 한 예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19세~75세 이하 남녀 약 4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정치 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 및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58%를 차지한 것을 볼 때 정치 영역을 벗어나 우리의 실생활에도 정서적 양극화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 언제부터 시작됐나?
우리나라의 정치 양극화의 시작점을 묻는 방청객 박종명 씨의 질문에 이 교수는 1997∼1998년을 우리나라 정치사의 중요한 시기로 꼽았다. 1997년에 치러진 15대 대통령 선거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며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남북 문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고조되었다. 또한 1997년은 IMF 외환 위기를 겪은 해이기도 한데, 전에는 없던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또한 80년대에 민주화를 이끈 386세대가 신진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며 진보적 이념이 강한 세대가 정치 무대에 대거 진입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4년, 우리나라의 정치 양극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후 민주당 내 세력이 분열되고, 86세대를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며 민주당은 양분됐다. 약해진 지지 기반은 탄핵으로 이어졌고,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사태를 계기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현재까지도 탄핵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으며, 정치적 갈등이 더 심화되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팬덤 정치에 흔들리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인에게는 자신을 열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집단인 팬덤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 팬덤은 특정 정치인에게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생각이 다른 정치인과 정치 집단에는 공격적인 태도로 SNS와 댓글 등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수의 극단적 지지층이 정책 결정과 정치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팬덤 정치’에서 정작 중요한 민생 입법·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결국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
2021년 트럼프 지지자 의회 불법 난입 사태, 올해 트럼프 피격 사건 등 미국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인 팬덤 정치는 우리나라에서 2016년 총선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연사 이 교수의 설명. 강성 지지자 집단을 가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 참여로 여론을 동원했고, 민주당은 온라인 입당을 권장하며 약 10만 명에 가까운 온라인 당원을 모집하며 팬덤을 형성했다.
그 후 팬덤 정치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고, 팬덤이 당의 의사결정에 일방적이고 큰 목소리를 내며 협박 문자와 언론사 항의 등 익명성을 기반으로 상대 정당이나 당내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정치인들이 정책과 공약이 아닌 싸움과 독설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팬덤에 기대어 당내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 양극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정치인들의 사적 이익 추구가 정치 양극화를 가속시킨 원인인 것 같다며 정치 양극화의 해결 방안을 묻는 방청객 조석진 씨의 질문에 이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 권력이 개인이나 정당에 집중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결 우선 원칙으로 다수파의 전횡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배제되는 다수제 민주주의 선거 제도가 아닌 비례성이 보장되는 합의제 민주주의 선거 제도를 통하여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또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 확립과 함께 상호 관용과 존중의 정치 문화 정립 역시 필요하다고 전하며 정치인의 언어 윤리 규범 정립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입법권은 국가의 심장이다. 심장이 기능을 멈추면 국가는 법이 아니라 입법권에 의해 존속된다”는 철학자 루소의 발언을 인용하며 정당과 국회가 시민의 대표이자 입법 기관으로서 중요한 민생의 의제를 챙기고 사회적 갈등을 조율해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책임 있는 정당 정치를 구현해 내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강연을 마무리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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