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윤의 작심한달] "이렇게만 안하면 성공"…똥손의 홈베이킹 실패기

이채윤 2024. 9. 21. 11: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레시피 무시했다가 연이은 실패
그럼에도 스스로 챙기는 시간 즐거워
초보자들 '00믹스' 사용하면 쉬워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는 무언가 큰일을 이루겠다고 마음먹지만, 연말이 되면 어떤 다짐을 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지곤 합니다.

‘작심삼일’의 사전적 의미는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삼일’에 그치는 ‘작심’을 자꾸만 계속해 작심 일주일, 작심 한 달, 작심 일 년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굳지 못한 결심’은 느슨한 채로 이어져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작심삼일을 밥 먹듯이 일삼는 이채윤 기자가 여러 취미를 찾아 한 달 동안 체험해 봅니다.

일터가 아닌 곳에서 삶의 재미를 찾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생생한 경험담을 작심삼일을 반복해 작심한달을 한다면 ‘내 일’이 ‘내일’이 될 거란 기대로 말입니다.
 

▲ 강원 정선군청소년수련관 제빵교육실에서 시민들이 제과·제빵전문봉사단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자료사진]

어렸을 땐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다. 로망 중 하나를 손꼽아보자면, 혼자 사는 멋쟁이 어른으로 살면서 홈베이킹을 해 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원가족에서 빠져나와 자취 생활을 한 지도 몇 년이 흘렀지만, 홈베이킹은커녕 요리조차 귀찮은 어른이 됐다. 그러던 내가 친구들에게 홈베이킹을 새로운 취미로 추천받았고, 어쩌다 보니 오븐형 에어프라이어를 갖게 돼 홈베이킹에 도전했다.

언제나 로망은 현실과 달랐다. 한번 무언가를 만들고 쌓이는 설거짓거리부터, 애매한 맛과 비주얼까지. 나는 ‘똥손(재주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래서 이 글은 제빵의 기록이 아닌 ‘이렇게 하면 홈베이킹은 망해요’라는 실패의 기록이 될 듯하다.

재료를 살 때만 해도 설렜다. 강력분과 중력분, 박력분의 차이조차 몰랐다. 강력분은 ‘빵’ 만들 때 쓰고, 박력분은 ‘쿠키’ 만들 때 쓴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만큼 나는 무지했다.

만들고 싶었던 건 참 많았다. 오트밀 쿠키, 식빵, 말차갸또쇼콜라, 소금빵 등을 만들고 싶었다. 레시피도 다 찾아봤고 사실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자신 있었다. 호기롭게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의 레시피를 참고해 ‘우유 식빵’에 도전했다.

 

 

▲ 어설프게 산 홈베이킹 재료들.
▲ 식빵이라고 부를 수 없는 식빵이었던 빵의 모습. 빵의 충격적인 모습처럼 맛 역시 충격 그자체였다. 이채윤

저울을 사용해서 계량도 정성껏 했다. 반죽도 나름 해보고 냉장고에서 숙성해줬다. 그런데 이상한 게 반죽이 너무 묽었다. 알고 보니 내가 레시피를 대충 읽어서 찾아봤던 레시피는 ‘제빵기용’ 레시피였다. 반죽 발효가 전혀 되지 않았다. 묽어서 또 걱정되는 마음에 밀가루를 더 때려 넣었더니 점점 더 반죽은 이상해졌다. 이건 정말 아니구나, 아찔했다. 틀에 넣어서 구웠더니 냄새는 정말 여느 빵집 못지않은 좋은 향이 났다. 그러나 비주얼은 차마 식빵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친구가 나왔다. 맛은 절망스러웠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것이 ‘눈물 젖은 빵’이 아닐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자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머핀틀도 샀으니 대기업 모회사의 머핀 믹스를 이용해 머핀에 도전했다. 반죽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장만한 미니 오븐이 머핀 틀보다 작았다. 머핀 모양을 잡아 줄 베이킹컵이 없었다. 그래서 또 야매로(?) 유산지에 반죽을 넣어 머핀을 구웠다. 모양은 비극적이었지만 머핀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대기업의 검증된 맛,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왔다.

 

 

▲ 머핀 믹스 반죽의 힘을 빌려 머핀 만들기를 시도했다. 이채윤
▲ 스콘이었던 빵의 모습. 반죽 배합 실패탓으로 버터맛만 은은하게 나는 탄 스콘이 완성됐다. 이채윤

그 다음엔 스콘에 도전했다. 이번엔 계속 사용하던 계량컵이 보이지 않았지만 만들고 싶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거라던데, 내가 딱 그랬다. 눈대중으로 스콘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밀가루를 넣고, 넣고 또 넣었다. 우유를 너무 많이 넣은 탓일까? 반죽이 레시피처럼 되지 않았다. 너무 질척이는 반죽을 끌어안고 대왕 스콘을 구웠다. 맛은 밍밍했다. 버터 맛만 은은하게 났다. ‘맛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무(無)맛이었다. 스콘을 한입 맛보고 잠깐 나간 사이에 강아지가 스콘을 다 먹어 치웠다. 아무래도 내겐 맛이 없는 스콘이었지만 강아지에겐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무맛의 스콘을 버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 많이 태우기는 했지만 그나마 먹을 수 있었던 바스크 치즈케이크. 이채윤

유일하게 성공한 디저트가 탄생했다. 크림치즈를 한 통 다 써서 만든 바스크 크림치즈케이크. 생각보다 베이킹에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게 신기했고, 만들면서 재밌었다. 계량을 레시피대로 하니 나름 성공했다. 다 만든 케이크는 엉망진창의 모습이긴 했지만,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누군가는 ‘지옥에서 온’ 치즈케이크 같다고 했다. 다른 이는 ‘케이크가 새콤하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맛있다’는 평을 내렸다.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나눌 수 있는 홈베이킹의 매력을 알게 됐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반죽을 만들고 맛있는 빵을 기대할 때마다 늘 기분이 좋아졌다. 나 자신을 위해 빵을 굽고,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챙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요리와 빵을 좋아한다면 추천· 집안일이 귀찮다면 비추천

요리를 좋아하는데 빵까지 좋아하는 ‘빵순이·빵돌이’라면 홈베이킹은 정말 잘 맞는 취미가 될 것이다. 좋아하는 만큼 맛을 낼 수 있을 테니 입맛에 맞는 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스트레스를 풀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홈베이킹은 나 자신을 챙길 수 있는 취미다. 집에서 재밌게 할 수 있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는다면 강력 추천.

다만 집안일을 싫어한다면 홈베이킹은 안 맞는 취미일 것으로 확신한다. 빵 하나 만드는데 수많은 설거짓거리가 나온다. 빵 하나 만들었는데 쌓이는 그릇들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면 홈베이킹은 다음 기회로 미뤄보자.  

#홈베이킹 #반죽 #작심 #레시피 #스콘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