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빙하 녹으면 '종말의 날'…21세기 이후는 [사이언스 PICK]
"최악의 경우 2300년까지 해수면 4m 이상 상승…온실가스 감축 이어가야"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이른바 '종말의 날 빙하'라고 불리는 남극의 스웨이츠 빙하가 기존 예상과는 달리 급격한 붕괴를 겪진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갑작스런 붕괴가 아니라 해수면을 서서히 높여갈 것이라는 것. 다만 해수면 상승 자체는 사실상 막을 수 없는 만큼 여전히 온실가스 감축 등의 대응은 필요한 상황이다.
21일 학계에 따르면 전세계 1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스와이츠 빙하 연구팀(ITGC)은 수년 간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 종료에 앞서 최근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연구팀은 스웨이츠 빙하가 급격히 붕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번 세기에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보고됐다.
남극 서남쪽에 위치한 스웨이츠 빙하는 면적 약 19만㎢, 폭 약 130㎞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다. 매년 약 500억톤의 얼음과 물을 바다로 유입시키며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학계에서는 스웨이츠 빙하가 모두 녹아내리면 전 세계 해수면이 약 65㎝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웨이츠 빙하가 '종말의 날' 빙하라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스웨이츠 빙하는 남극에서 바다로 흘러내려 가려 하는 빙상들을 막고 버티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남극 빙하의 완전 붕괴를 막는 일종의 수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빙하가 녹으면 주변 빙하들까지 연쇄적으로 바다로 녹아내리게 되고, 그 결과 지구 전체 해수면이 최대 3m 이상 높아질 수 있다.
기존에는 스웨이츠 빙하가 수년 내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으로 우려됐으나 ITGC의 연구에 따르면 당장 위기가 찾아오진 않을 전망이다. 스웨이츠 빙하는 급격한 붕괴가 아니라 향후 수십년 동안 천천히 후퇴하며 이번 세기 말까지 전 세계 해수면을 최대 6㎝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됐다.
보통 빙하는 눈이나 얼음이 상단부에 쌓여 무거워지고, 그로 인해 바다로 향하면서 조금씩 녹아내리는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하면 눈이 쌓여 빙하가 생성되는 것보다 빠르게 녹아내리게 되고, 결국 지상과 바다의 경계에서 빙하가 '후퇴'하는 형태가 나타난다. 빙하 후퇴가 심해지면 빙하의 크기가 줄어들고, 결국 바다로 더 많은 물이 흘러들어가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연구팀이 예측한 해수면 6㎝ 상승은 2100년까지 남극·그린란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약 38~77㎝ 높아질 것이라는 최근 UN 기후보고서의 수치와 부합한다. 이 중 대부분이 스웨이츠 빙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의 위협은 피하더라도 여전히 스웨이츠 빙하는 장기적으로 암울한 미래에 놓여있다. 녹아내리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 종말의 날이라고 불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스웨이츠 빙하와 그 주변 빙하의 붕괴로 인해 2300년까지 해수면이 4m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더욱이 스웨이츠 빙하 아래 지형이 암석, 퇴적물, 호수 등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형태여서 붕괴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빙하가 후퇴하던 도중 장애물에 걸리게 될 지, 혹은 붕괴를 더 가속화시킬 요인이 있을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스웨이츠 빙하가 후퇴하는 주요 원인은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보다는 빙하 자체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탓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스웨이츠 빙하의 일부인 거대한 빙붕에는 단검 형태의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빙붕은 향후 10년 내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빙붕이 다른 빙하를 막는 수문 역할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어 빙하 손실 속도를 크게 가속화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연구진은 스웨이츠 빙하가 당장 붕괴하진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온실가스 감축 등의 대응과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향후 수년 간 대규모 추가 연구는 이뤄지지 못할 전망이다. 그간 ITGC의 주요 후원기관이었던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자금 부족 등으로 인해 지원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고, 스웨이츠 빙하의 지역 특성상 현장 조사 진행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ITGC 연구진은 기존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웨이츠 빙하 상태를 지속 분석하고 예측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스웨이츠 빙하 연구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를 맡은 영국 남극연구소(BAS) 소속 해양 지구물리학자 로버트 라터는 "스웨이츠 빙하의 앞부분이 바다로 무너져 내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번 세기에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10년 전에는 큰 위협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BAS 소속 지질학자인 조앤 존슨은 "스웨이츠 빙하가 과거 손실에서 회복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수준의 얇기에서 회복하려면 전세계가 온실가스 배출을 빠르게 줄여야만 한다. 회복에는 수천년이 걸릴텐데, 이는 사회적으로 너무 긴 시간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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