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주 6일‧하루 17시간 일해도 ‘산재 적용’ 불가”…간병인 보호 법안 나왔다
“안전한 간병노동 없이는 환자 안전도 담보 불가…사회 필수과제들 하나씩 해결해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동료 간병인의 죽음이 너무 쓸쓸하다" 지난 8월31일 진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노동자로 일하는 왕아무개(62)씨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왕씨는 평소와 달리 이틀 전부터 극심한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는 등 뇌출혈 증상이 있었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본인에게 배정된 6명의 환자를 모두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왕씨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수술도 못 해보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온라인 매체 단디뉴스 보도)
이처럼 환자의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를 하는 간병노동자들은 극한의 노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연구원이 공개한 '간병노동자 건강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96명의 일주일 평균 근무 일수는 6.01일,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7.18시간으로 나타났다. 특히 야간 평균 취침시간은 4.74시간에 불과했다. 또 이들 대다수는 업무 중 다치거나 환자들의 감염병에 옮는 경우도 많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업무 중 환자들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에도 상당수 노출돼있었다. 응답자들은 반말이나 모욕적인 말 등 비인격적 대우(70.6%), 욕설 등의 언어폭력(62.3%), 구타나 집기에 맞는 등 신체폭력(32.6%) 등에 노출됐다고 답했다. 일부는 병원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데도 병원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PCR 검사 비용도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등 일부 차별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과도한 노동과 위험에 노출돼있음에도 간병노동자들은 어떠한 노동관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근로관계로 인해 법원에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때문에 이들은 업무 중 부상을 입어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해 결국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며, 각종 차별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에 일각에선 안전한 간병노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이들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져왔다.
"간병인들도 노동자로서 '업무 재해'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기반 필요"
국회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에 응답해 발 벗고 나섰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광명을)은 본인의 1호 법안으로 '간병인 산재보험 적용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 일부개정안)'을 지난 6월12일 대표 발의했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병인에 대한 산재보험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업무상 재해를 보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해당 법안에 간병노동자들과 의료계도 화답하고 있다. 이조순 서울대병원 희망간병분회 사무장은 김 의원의 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간병인들이 일을 하다가 다치고 병이 나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간병인들은 산재보험 뿐 아니라 제도적 보호가 전무하다"고 토로했다. 현정희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도 "간병노동자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노동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안이 꼭 통과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남희 의원은 2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법안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안전한 간병노동 없이는 환자들의 안전도 담보될 수 없다. 환자를 돌보다가 병원에서 부상을 당하고 감염되는 간병노동자가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며 "간병노동자도 노동자로서 산재보험 특례규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래는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해당 법안을 발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통상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다면, '간병인'이 환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시 위험에 노출됨에도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아 어떠한 노동관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 적용'은 이들의 오랜 염원이었으나 번번이 좌절돼왔다. 저는 지난 2022년 서울시 간병인 표준계약서 개발 연구에 참여하며 이러한 문제점을 알게 돼 간병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방안을 연구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번 법안까지 발의하게 됐다."
간병노동자는 특히 '고령화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이유는 무엇으로 보는가.
"현행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 외에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노무제공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 사인(私人) 간의 계약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돌보는 업무를 수행하는 간병노동자의 경우 사고와 질병의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근로자나 노무제공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외 선진국에선 간병노동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산재보험을 지원하나.
"한국과 비슷한 간병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만의 경우 정부가 일부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대만은 고용주(사용자)가 없더라도 노동조합을 통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특례 조문을 만들어놓았다."
간병노동자들 입장에선 이번 법안으로 어떤 부분이 실질적으로 변하게 되는가.
"법 개정을 통해 환자를 돌보다가 병원에서 다치고 감염되는 간병노동자를 사회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 건강하고 안전하게 간병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간병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안전한 간병 노동 없이 환자들의 안전도 담보될 수 없는 상황으로 우리 사회 필수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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