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 역대 최연소 고이즈미 총재냐 38년 의원 생활 이시바 총재냐
(시사저널=박대원 일본통신원)
8월1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이후 차기 총재직을 노리는 자민당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다수당 대표(당 총재)가 총리 지명선거를 거쳐 총리로 선출되어 내각을 구성하는 관행이 있다. 즉, 자민당이 중의원(하원) 총 의석(465석)의 절반 이상(257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실시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는 사실상 차기 총리를 결정짓는 선거다. 자민당 총재직은 당 소속 국회의원(중의원과 참의원을 합친 367표)과 당원·당우(367표)를 합산해 과반을 차지한 후보에게 돌아가며, 아무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9월27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자민당 소속 의원 20명의 추천이 필요하다. 현재 후보등록을 마친 인물은 총 9명이다.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가미가와 요코 외무상, 고노 다로 디지털담당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이시바 시게루, 고이즈미 신지로, 다카이치 사나에 3인이다.
먼저 방위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시바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4번이나 출마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정치인으로 이번 선거를 '마지막 싸움'으로 규정하며 선거 승리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산케이신문과 FNN(후지뉴스 네트워크)이 9월14~15일 이틀간 실시한 공동여론조사에서 이시바는 '자민당의 새로운 총재에 걸맞은 인물' 1위(25.6%)로 뽑히는 등 폭넓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14선 의원이자 42년간이나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오랜 견원지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편이다. 자민당 파벌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논란 이후 이시바가 이끄는 약소 파벌인 수월회(水月会)는 해체된 바 있다.
아버지 고이즈미는 "낡은 자민당 깨부순다"
'1980년대생' 젊은 정치인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아베 내각에서 환경상을 맡고 있던 2019년, "기후변화 문제는 펀하고(즐겁고) 쿨하고(멋지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발언해 이른바 '펀쿨섹' 논란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낡은 자민당을 깨부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인기몰이를 했던 것과 같이, 신지로는 이번 선거에서 "낡은 자민당과의 결별"을 외치며 당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조성 논란으로 자민당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 활동비 폐지 등 "정치자금 투명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만 43세인 고이즈미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될 경우, 역대 최연소 총리 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기시다 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들이 외무상, 관방장관 등 주요 각료직을 경험하거나 자민당 3역(간사장·정무조사회장·총무회장)을 맡은 경험이 있는 반면, 고이즈미는 2019년 환경상으로 입각한 게 전부라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고이즈미를 전폭 지지하며 '킹메이커' 역할을 꾀하고 있어 고이즈미가 결선투표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베 걸스'(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가까운 우익 성향의 여성 정치인을 뜻하는 말)로 불리며 자민당 우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다카이치는 지난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 마이넘버카드(주민등록증에 해당)담당상 등을 역임했다. 현 기시다 내각에서 경제안전보장상을 맡고 있으며 현직 관료로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광복절(일본의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등 '우익의 기수'로 평가받고 있다. 총재 선거 공식 출마를 선언한 9월9일 기자회견에서는 총리에 취임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등장하게 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고이즈미가 1위
다만, 여성 의원임에도 '선택적 부부 별성제'(결혼한 부부가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 반대하는 등 전통적인 일본의 가족관에 기반한 보수적인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어 '여성 총리'로서의 신선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젊은 피'를 앞세워 당 혁신, 정치 혁신을 제창하는 고이즈미 신지로가 부부 별성제 관련 법안 제출에 대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시바·고이즈미·다카이치 3강 구도는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아사히신문이 9월14~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총재에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이시바(26%), 고이즈미(21%), 다카이치(11%)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같은 시기 요미우리신문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투표권을 갖는 자민당 당원 및 당우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이시바(26%), 다카이치(25%), 고이즈미(16%) 순으로 나타나 이시바가 선두를 달렸다. 반면, 교도통신이 9월15~16일 실시한 자민당 지지층에 대한 전화조사에서는 다카이치(27.7%), 이시바(23.7%), 고이즈미(19.1%) 순으로 나타나 다카이치가 가장 앞섰다. 다만, 자민당 지지층 중에서도 총재 선거 투표권을 갖는 응답자에 한정해 동일한 질문을 했더니, 고이즈미(27.9%), 다카이치(21.4%), 이시바(19.7%) 순으로 드러나 고이즈미가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9월17일 저녁, 다카이치의 총재 선거 입후보를 지지한 추천인 20명 중 자민당 파벌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이 1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선거 판세가 요동칠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자민당이 정치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총 39명의 의원(아베파 36명, 니카이파 3명)에게 징계처분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징계처분을 받은 의원 3분의 1이 다카이치의 추천인이 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 다카이치의 추천인 중 16명이 아베파 및 니카이파 의원으로 확인된다. 9월15일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추가적인 조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재발 방지를 철저히 하는 데 힘쓰겠다"고 발언한 다카이치가 추천인의 불법 정치자금 논란을 딛고 3강 구도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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