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민호 첫 연극 맞아? 과몰입 부르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Oh!쎈 리뷰]

연휘선 2024. 9. 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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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연휘선 기자] 보이그룹 샤이니 멤버 민호가 배우로서 첫 연극에 도전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해석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통해서다. 말장난 같지만 나름의 의미를 담은 유쾌한 작품의 한국 초연에 베테랑 대배우 이순재와의 캐스팅으로 의미를 더했다. 

민호는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개관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연출 오경택)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긴 제목 탓에 팬들 사이에서는 일명 '고기기'라고도 통하는 이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이 가운데 민호는 대역배우 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위대한 연극계 고전이지만 동시에 어렵기 짝이 없는 난해한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찾아대는 '고도(godot)'라는 대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이 맞기는 한 건지 다양한 해석의 재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정답의 묘미를 선사해주는 작품이다.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데이브 핸슨이 이 난해함과 불가해를 '고기기'에서 현대적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고기기'에서는 고도를 찾는 대신, 원전의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언더스터디'(대역 배우)의 이야기를 그린다. 에스트라공의 대역배우 에스터, 블라디미르의 대역배우 밸은 언제든 주어질 기회를 엿보며 분장실에서 한없이 '기다림'을 이어간다. 

지난 20일 무대에서 만난 민호는 배우 이순재, 박수연과 공연을 함께 했다. '원 캐스팅'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국내 공연계에서 '고기기'는 고정 페어로 오랜 호흡의 견고함을 더했다. 우선 에스터 역에는 이순재와 곽동연, 밸 역에는 카이, 박정복, 민호, 로라 역에는 정재원과 박수연이 더블, 트리플 캐스팅 됐다. 단 페어는 섞이지 않는다. 이순재는 카이, 민호와 번갈아 호흡하고, 곽동연은 오직 박정복 하고만 무대에 선다. 상연 시간 또한 이순재 페어는 80분, 곽동연 페어는 90분으로 차이를 뒀다.

'팀 페어' 구성은 그 자체로 무대에서 꽤나 큰 동력이 된다. 연습부터 실전까지 상대가 바뀔 가능성이 없으므로 사실상 이들 배우들의 합 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유지된다. 카이와 민호를 번갈아 만나는 이순재는 만 89세, 무려 1956년에 데뷔해 연기 경력 70년을 바라보는 대배우다. 이에 연륜으로 호흡의 격차를 상쇄한다. 

무엇보다 이순재의 에스터와 민호의 밸은 그 자체로 '고기기'의 의미를 살려낸다. 삶이 곧 연기였던 이순재의 에스터가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민호의 밸과 만나 '연기란 무엇인가'를 나눈다. 상황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역배우로서 실연하지 못한 연기의 한을 푸는 것이지만, 실상은 고수와 초심자의 허심탄회한 대화나 다름 없다. 이 가운데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조롱하고 비웃다가도 금세 동조하고 위로하며 동질감을 나눈다. 

아직 초반인 이 작품에서 베테랑 연기자 이순재의 노련함이야 차치하고, '첫 연극'이라는 민호의 상황은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민호는 적어도 처음 무대에 서는 신예의 불안한 모습은 충분히 지워낼 수 있는 기량을 보여준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가족X멜로'에서 보여준 안정적인 모습이 '고기기'의 무대에서도 통하는 셈이다. 샤이니로 데뷔한 지 16년, 긴 시간 팀으로 솔로 아티스트로 프로의 세계를 버텨온 열정과 노력을 '고기기'에서도 잊지 않고 해낸 모양새다.

무대 위 모든 순간은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매회차를 거쳐 배우도 성장한다고 볼 때, 한 작품의 프리뷰와 피날레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작품과 무대만 고정돼있을 뿐 처음과 끝의 배우는 전혀 다른 깊이감을 갖기 때문. 이에 '고기기' 속 민호의 밸 또한 초반부인 지금보다 후반부의 결과물이 더욱 기대된다. 이미 충분히 프로답지만 더욱 완성될 거라는 기대감을 지울 수 없다. 세상 노련한 이순재의 에스터에게 가르침을 받는 민호의 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변화다. 

그렇다고 도대체 '고도'가 무엇인지 '고기기'에서도 답을 기대하진 말길. 원전의 난해함은 조금 더 경쾌하게 풀어졌을 뿐 여전히 정답을 가리키진 않는다. 이들은 그저 순수하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원하고 기다릴 뿐이다. 곧 구순의 이순재와 30대 초반의 민호 모두 연기 앞에 동등한 무대라 더 반갑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오는 12월 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에서 상연된다.

/ monamie@osen.co.kr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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